배낭여행지에서 살해된 20대 여성들의 '마지막 편지'

celsetta@donga.com2017-01-04 15: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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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마리아 메네가초 씨 페이스북(@marina.menegazzo.3)
2016년 2월, 두 명의 아르헨티나 여성이 에콰도르로 배낭여행을 떠났다가 참혹하게 살해당했습니다. BBC등 외신들도 이 사건에 주목했습니다. 21살 마리나 메네가초 씨와 22살 마리아 호세 코니 씨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둘은 노숙자 자활 보조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같이 할 정도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행하는 중간중간 즐거운 순간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행복해하던 두 사람. 1월 10일 길을 떠난 그들은 귀국을 하루 앞둔 2월 22일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두 사람이 흉기에 여러 번 찔린 참혹한 상태로 해변가 쓰레기통 옆에서 발견되자 남미 전역이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누군가 그녀들을 성폭행하려 했고 저항하자 흉기로 살해한 것입니다. 얼마 후 두 명의 남성 용의자가 붙잡혔지만 앞길 창창한 젊은이 두 명은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됐습니다.



사진=마리아 메네가초 씨 페이스북(@marina.menegazzo.3)
많은 사람들이 두 여성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지만 개중에는 “헐벗고 다니니 그렇지”, “여자 두 명이서 치안도 안 좋은 곳에 여행을 갔으니 자업자득이다”, “마약 한 거 아니냐”, “여자들끼리 여행 보낸 부모도 문제다”라며 막말을 쏟아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마리나 씨 SNS에는 “옷을 이렇게 입고 다니니 표적이 되는 거다”라는 악플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악플에 마리나·마리아 씨 유가족은 또 한 번 큰 상처를 받아야 했습니다.

‘여자끼리 위험한 곳에 간 게 잘못이다’, ‘옷차림이 조신하지 못하다’등 얼토당토 않은 주장이 점점 많아지자 한 파라과이 학생이 용기있는 일침을 남겼습니다. ‘과달루페 아코스타’라는 이름의 이 학생은 숨진 두 여성의 시점에서 편지를 써서 페이스북에 공개했습니다.

“어제 그들이 절 살해했습니다.

그들의 손길을 뿌리치자 그들은 몽둥이로 뼈가 부서지도록 저를 때렸고 칼로 찔렀습니다. 과다출혈로 숨진 나를 그들은 큰 비닐봉투에 넣고 테이프로 둘둘 말아 해변가 쓰레기통 옆에 내다 버렸습니다.

하지만 죽음만큼이나 끔찍했던 건 사람들의 모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범인을 찾기보다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걸 더 좋아했습니다. "무슨 옷을 입었길래? 여자 두 명이서 위험한 동네에 왜 갔을까? 제 발로 해변에 가 놓고 뭘 기대했지? 마약 한 거 아니야? 여행을 허락해 준 쟤들 부모도 이상해." (중략)

만약 죽은 사람이 젊은 남자 두 명이었다면 사람들은 애도를 표하며 “살인자들을 꼭 잡아 엄벌하라”고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와 제 친구가 여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우리의 품행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을 놀리고 있습니다.(중략)

당신이 여자라면 40도가 넘는 무더위에 짧은 바지를 입고 나갔다가 남자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해도 당신 책임이 됩니다. 여행 도중 목숨을 잃으면 “여자가 위험한 줄도 모르고 여행을 갔으니 자업자득”이라는 소리를 들을 겁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억누르고 살았던 여성들이 언젠가는 침묵하지 않아도 될 날이 오리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당신들 옆에서 함께 할게요.”

과달루페 씨가 남긴 이 애도의 글이 마리나 씨와 마리아 씨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달래 주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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