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규칙한 근무는 발암물질…‘꿀잠’이 암 예방

주간동아2017-01-03 20: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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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구진, 생체리듬과 암 억제 유전자 간 관계 확인…암 예방 명약은 ‘꿀잠’
23년째 제조업체에서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 A(50)씨는 조만간 평생 몸담아 온 직장을 그만둔다. 전립샘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20년째 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는 B(44)씨도 유방암 조기 진단 후 수술을 받았다. 불규칙한 근무시간 패턴이 암의 한 원인인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빛 공해가 심한 나라다. 사회 시스템을 24시간 유지하고자 밤에도 잠들지 못한 채 깨어 있는 이가 많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현재 국내 제조업의 22%가 교대근무를 채택하고 있다. 한때 공공서비스 영역에만 해당되던 24시간 근무체계가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다. 문제는 밤에 잘 자지 못하면 암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생체시계 불안정한 교대근무 직종 위험
지구 모든 생명체는 밤낮의 주기적 변화에 대처하고자 몸속에 생체시계를 지니고 있다. 사람이 자고 깨는 행동도 24시간을 주기로 돌아가는 ‘일주기 생체리듬’의 영향을 받는다. 이 리듬이 불안정해지면 당뇨, 암, 심장병 등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데 교대근무나 잦은 야근이 이 리듬을 깨뜨린다.

과학자들은 일주기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유전자 가운데 하나인 ‘HPer2(Human Period 2)’가 암 발병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유전자에는 종양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 유전자가 변형된 사람은 80% 이상 확률로 암이 생긴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암 발병을 억제하는 체내 유전자의 양이 생체리듬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분석해 주목받았다. 김재경 KAIST(한국과학기술원) 수리과학과 교수팀은 미국 버지니아공대 연구팀과 함께 암 억제 유전자인 ‘p53’ 양이 24시간 주기로 변하는 원리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 결과는 11월 9일 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온라인판에 실렸다.

이번 연구를 통해 김 교수 등은 뇌에서 생체시계를 관장하는 HPer2와 p53 농도가 서로 관련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세포질에서 HPer2 양이 많아지면 p53 양이 적어지고, 세포핵에서는 HPer2 양이 많아질수록 p53 양도 증가했다. 밤낮이 바뀌는 등 생체리듬에 문제가 생겨 HPer2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암이 생길 수 있는 셈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이 연구 결과가 생체시계가 불안정한 교대근무 직종 종사자의 암 발병 확률이 높은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법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간 각 항암제가 투약 시간에 따라 치료 효과가 달라지던 원인 역시 이번 연구 성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7년 12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규칙적이지 않은 근무 형태’를 발암물질로 규정한 바 있다. 살충제 등이 속한 2A군 발암물질 81개 가운데 하나로 이를 넣어 ‘사람에게 암 유발 가능성(probably)이 있다’는 꼬리표를 붙였다. IARC가 이러한 결론을 내린 것은 수면과 암 발병의 상관관계를 밝힌 과학 연구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 화중대 연구진은 11월 4일 20년 이상 야간근무를 한 남성이 충분한 수면을 취한 사람에 비해 암 발병률이 27%가량 높다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 ‘의학회보(Annals of Medicine)’에 발표하기도 했다.

해당 연구진은 중국 자동차회사 동펭을 다니다 은퇴한 남성 2만7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30분에서 1시간가량 낮잠을 자지 않는 사람, 20년 이상 야간근무를 한 사람, 밤에 10시간 이상 취침을 하는 사람 등이 암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2개 이상의 습관을 동시에 가진 경우 암 발병률이 43%까지 높아졌다.

이 연구를 진행한 환궈 교수는 “이러한 경향이 여성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여성의 교대근무 역시 여러 연구에서 암 발병 원인으로 지목됐다. 대표적으로 30년간 월 3회 이상 야간 교대근무를 지속한 여성이 주간근무만 한 여성에 비해 유방암 발병 위험은 1.36배, 자궁내막암 발병 위험은 1.47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너무 많이 자도 해로워”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빛 공해가 심한 나라다. 한밤중에도 불을 환히 밝힌 한 건물. [동아일보]
수면은 시간뿐 아니라 질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또한 많다. 아이슬란드대 연구진은 불면증이나 수면무호흡증 등 수면장애가 있는 남성의 전립샘암 발병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2.1배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67~96세 남성 2100여 명을 대상으로 5년간 조사한 결과다. 반면 질 좋은 수면을 취해 수면호르몬이 정상적으로 분비되면 암 치료 효율이 높아진다. 같은 약을 먹을 때 적은 용량만으로 동일한 치료 효과를 보이며 부작용 역시 줄어든다는 의미다.

문제는 국내 수면장애 환자가 최근 5년 새 급격히 증가했다는 점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수면장애 환자는 2011년 32만5000명에서 2015년 45만6000명으로 40% 이상 많아졌다. 각종 조사에서 ‘가장 두려운 질병 1위’로 꼽히고 한국인 사망원인 질병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암을 피하려면 일단 잠을 잘 자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수면이 좋은 수면일까.

대한수면학회는 일반적으로 하루 6~8시간 수면을 취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말한다. 이보다 잠이 부족하면 피로가 쏟아지고 집중력이 저하된다. 많이 잔다고 꼭 좋은 건 아니다. 앞서 언급한 화중대 연구에서도 하루 10시간 이상 수면은 오히려 암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쾌적한 수면을 위한 십계명

1. 일요일에 늦잠을 자지 마라.
2. 잠자리에 들기 전 먹고 마시는 것을 삼가라.
3. 카페인과 니코틴을 피해라.
4. 가능하면 운동을 매일 규칙적으로, 낮 시간 밝은 태양 아래서 하라.
5. 실내는 선선하게 유지하고 손발은 따뜻하게 하라.
6. 낮잠은 짧게 자라.
7. 잘 때는 TV를 꺼라.
8. 황제의 침실을 부러워 하지 마라.
9. 수면 전 긴장을 풀어라.
10. 많은 잠보다 충분한 잠을 자라.

출처 | 대한수면학회

‌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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