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vs SRT 고속철 집안싸움, 사라지는 벽지노선

주간동아2017-01-02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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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9일 개통된 서울 SRT 수서역. 서울 동남권 지역에서 고속철도를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조영철 기자]
2016년 12월 9일 수서발(發) 고속철도 SRT(Super Rapid Train)가 운행을 시작했다. SRT의 급부상에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 것은 KTX 광명역이다. 광명역은 안 그래도 큰 역사에 비해 이용 승객이 적어 말이 많았다. 앞으로 광명역을 이용하는 승객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SRT 개통으로 서울·경기 동남권의 승객을 수서역이나 동탄역에 뺏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광명역은 편의시설 추가 개설 등으로 고객 유치에 나설 예정이다.

SRT는 경쟁을 통해 KTX를 운영하는 코레일을 개혁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당장 고속철을 이용하는 소비자에게는 희소식이다. SRT가 KTX보다 요금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SRT는 수서역, 평택역, 지제역까지는 SRT 전용 철로를 이용하고 이후부터는 KTX와 같은 고속철로를 달린다. 공유 고속철로 구간인 천안아산역~부산역 구간의 요금을 비교해보면 SRT(4만1800원)가 KTX(4만6500원)보다 10%가량 저렴하다.

지상에 승강장이 있는 KTX와 달리 수서역 SRT 승강장은 지하에 있다. SRT의 전용 선로인 수서역~지제역(60.9km) 구간의 90%가 40~50m 깊이 지하터널이기 때문이다.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KTX는 광명역까지 일반 철도를 이용한다. 반면 SRT는 출발부터 고속철로를 달리니 가속만 붙으면 금방 최고속도를 낼 수 있다.

객실 내 편의시설도 일단 SRT의 판정승. SRT는 KTX에 비해 좌석 두께가 얇다. 그 덕에 앞좌석과 무릎 사이 공간이 KTX에 비해 5cm가량 넓다. 최근 SRT를 타고 부산 출장을 다녀온 직장인 김모(34) 씨는 “키가 187cm인데 KTX를 타면 항상 무릎이 앞좌석에 닿아 불편했다. 하지만 SRT는 공간이 비교적 넓어 훨씬 편안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두 좌석 사이에 전기 콘센트가 있어 열차를 타고 가면서 휴대전화 충전이 가능하다. 게다가 내부 와이파이(WiFi) 속도도 빨라 젊은 승객의 만족도가 높다. 방학을 맞아 광주에 있는 부모님 댁에 가는 대학생 박모(21) 씨는 “KTX를 탈 때는 콘센트가 없어 항상 휴대전화 보조배터리를 챙겨야 했다. 하지만 SRT는 좌석마다 콘센트도 있고 와이파이도 KTX에 비해 빠르다고 들었다. 게임을 하며 지루하지 않게 고향에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6년 12월 20일 경기 KTX 광명역 내부. 평일임을 감안해도 플랫폼에 사람이 거의 없다. [박세준 기자]
광명역 ‘4000억 원짜리 간이역’ 전락 우려

광명역의 가장 큰 문제는 연계 교통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광명역은 서울지하철 1호선에서 외따로 떨어진 노선이다. 30분에 한 번 오는 1호선 지하철을 타야 광명역으로 갈 수 있다. 버스 노선도 있지만 대부분 경기도에서 들어오는 시내버스다. 이 때문에 서울 승객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광명역까지 가기가 불편하다. 이 약점을 보완하고자 광명역에는 24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주차장이 있다. 대중교통이 불편해 차를 타고 역을 찾는 승객을 위한 배려다. 그러나 12월 20일 찾은 광명역 주차장은 점심시간인데도 이미 ‘만차’였다. 광명역 관계자는 “현재 주차 문제를 해결하고자 광명역 광장 남쪽에 30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주차빌딩을 짓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수서역은 광명역에 비해 대중교통 편의성이 좋다. 서울지하철 3호선과 분당선이 지나고 SRT 승강장도 지상이 아닌 지하에 있어 지하철역에서 승강장까지 거리도 짧다. 300m 남짓한 거리에 무빙워크까지 설치해놓아 걸어서 5분도 안 돼 승강장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자가용을 이용해 고속철도역을 찾는 사람이라면 광명역이 훨씬 유리하다. 광명역은 강남 한복판에 있는 수서역에 비해 교통체증에 시달릴 확률이 낮다. 게다가 수서역은 광명역보다 대지가 좁아 주차공간도 부족하다. 주차요금도 광명역이 저렴하다. 수서역의 1일 주차요금은 2만5000원이지만 광명역은 절반 수준인 1만3000원이다.

‌SR는 코레일 출자회사다. 전체 지분의 41%를 코레일이 보유하고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과 KDB산업은행이 각각 지분의 15%, 12.5%를 소유하고 있다. 나머지 31.5%는 연기금인 사학연금이 보유하고 있다. 즉 SR와 코레일은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일한 사업 영역에서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 현재는 이 집안싸움으로 고속철도 요금이 내려가 모두가 웃고 있지만 업계에선 머지않아 과도한 경쟁으로 적잖은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과당경쟁에 벽지 주민만 피해

실제로 요금 인하 경쟁으로 코레일에 고액의 적자가 발생한다면 철도 시스템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코레일은 벽지노선 등 일반 철도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고속철도에서 생기는 이익으로 메우는 ‘교차 보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속철도의 이익이 감소하면 코레일은 결국 고속철도를 제외한 여타 철도의 서비스 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코레일은 SRT 개통으로 기존 KTX의 수익 감소가 우려되자 벽지노선 운행 감축에 나섰다. 코레일은 2016년 12월 13일 “정부의 2017년 공익서비스 보상 예산 삭감으로 벽지노선의 운행 횟수를 절반가량 축소하고 16개 역의 무인화를 통해 인력감축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공익서비스 보상 예산은 철도발전산업기본법 제33조에 따라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무임수송 및 요금 할인, 수요가 극히 적은 벽지노선 운영 등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정부가 보상해주는 예산이다. 2017년 벽지노선 손실보상액은 2016년보다 650억 줄어든 1461억 원이다.

이에 따라 코레일은 “경전선, 동해남부선, 영동선, 태백선, 대구선, 경북선, 정선선 등 7개 노선의 112개 열차 가운데 56개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노선이 지나가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가뜩이나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마당에 철도 여건까지 나빠지면 지역공동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맞서지만, 코레일은 “정부 보조금 삭감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며 버티고 있다. 코레일 관계자는 “정부가 경영 효율화를 계속 요구하고 있고 SRT 개통으로 기존 KTX의 수익 감소까지 우려돼 벽지노선을 고수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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