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에 가면 누구나 시간여행자가 된다

여성동아
여성동아2016-12-31 07:10:02
공유하기 닫기
‘여행은 일상의 갱신이고 존재의 갱신을 위한 과정 같습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성석제는 단편 소설 ‘사냥꾼의 지도-프로방스의 자전거 여행’을 통해 우리가 프랑스 남부의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도시로 떠나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안내한다.

프로방스의 속살과 만난 우연한 여정의 기록
아비뇽 연극제에 참여, 이 도시와 주변의 낯선 마을들을 자전거로 둘러보는 ‘나’의 이야기를 담은 작가 성석제의 소설 ‘사냥꾼의 지도-프로방스의 자전거 여행’은 마치 누군가에게 보낸 여행 엽서 같은 문체와 친근함을 띠고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는 다양한 즐거움에 더해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는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꽉꽉 채워진 아비뇽과 프로방스에 대한 풍부한 정보이다.  



1177년 성 베네제와 그의 제자들이 론 강을 가로지르기 위해 건설한 아비뇽 다리. 
소설의 주 무대가 된 아비뇽 여행은 아비뇽 다리, 교황청, 그리고 구시가 등 크게 세 곳에서 시작된다. 이들을 중심으로 도시를 둘러보려면 5km 둘레로 축조된 성벽을 무시로 넘나들어야 한다. 이 성벽은 아비뇽에 머물렀던 교황들이 자신의 확고한 영역을 표시하면서 황제의 영향력으로부터 치외법권 지역임을 선포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쌓았다고 한다. 성문을 통해 수많은 여행자들이 드나들며 론 강변의 이 작은 도시를 샅샅이 훑어보는데, 바캉스 시즌과 아비뇽 연극제가 열리는 7월 한 달 동안 50여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몰려들 만큼 프로방스에서도 손꼽히는 여행지로 사랑받고 있다. 아비뇽을 찾아온 여행자들은 가장 먼저 교황청을 보고 싶어한다. 정확히 말해서 ‘교황궁(Le Palais des Papes)’이라 불리는 이곳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대한 궁성 유적지인데, 로만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이 로마가 아닌 프랑스 남부의 이 도시로 오게 된 것은 1305년 교황 클레망 5세(클레멘스 5세라고도 불리는데, 소설 〈다빈치 코드〉의 열혈 독자라면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바로 템플 기사단을 해체하고 그들의 막대한 부를 빼앗은 장본인이다)가 프랑스 황제 필리페 4세와 교권 문제를 상의한다는 구실로 로마행을 미루면서부터이다. 그 뒤로 모두 7명의 교황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아비뇽에 머물게 되면서 이곳은 새로운 교황청이 있는 도시로 유럽 사회에 각인된다. 프랑스 황제가 발목을 묶어놓는 바람에, 그리고 교황이 그의 눈치를 살피느라 70여 년간 계속된 이 ‘아비뇽 교황청 시대’에 교황들은 유배도, 수형도 아닌 시간을 이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해 웅장하고 화려한 궁성을 쌓으며 아비뇽 시대를 나름 즐긴 듯하다. 훗날 사람들이 ‘교황의 바빌론 유수’라며 그들을 비꼬아댈 것이라는 건 알지 못한 채.  

시간을 거슬러 마치 중세도시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아비뇽 구시가지.
노천 카페가 자리하고 아비뇽의 크고 작은 행사들이 열리는 것은 물론, 가장 넓으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늘 운집해 있는 광장 앞에 세워진 교황궁은 높이 50m, 두께 4m의 거대한 벽에 둘러싸여 신궁과 구궁 두 채로 나뉘어 있다. 전체 면적은 약 1만5000㎡로 현존하는 유럽 최대의 성채라고 아비뇽 사람들은 자랑한다. 고딕 양식이 주조를 이루는 교황궁은 높다란 망루와 첨탑을 사방으로 두르고 있는데, 그 내부는 최고의 영화를 누리던 당시를 말해주듯 웬만한 집 한 채와 맞먹는 크기의 방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구조이다. 교황의 집무실과 개인 처소, 대소 연회장 등이 때론 섬세하고 거대한 태피스트리와 중세풍의 벽화, 화려한 천장 등으로 장식되어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대연회장과 벽난로가 있는 교황의 개인 공간 등에서는 높다란 천장을 올려다보느라 목이 뻐근할 정도다.

하지만 궁의 대부분은 텅 비어 있다. 교황들이 머물렀던 당시는 달랐겠지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뒤 18세기 후반 국민의회의 ‘정화’ 작업으로 인해 성상이나 기타 장식물, 예술품 등이 파괴되거나 분실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간간이 유물 전시회를 열거나 세계적인 연극제인 ‘아비뇽 국제연극축제’에 상연되었던 주요 작품들의 무대 의상을 전시하는 등으로 허전함을 달래고 있다. 이 관람이 끝나는 곳에 주인공 ‘나’가 마주했던 기념품점과 바로 그 샤토뇌프뒤파프 와인을 파는 숍이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7명의 교황이 이곳에 거처할 때도 이 웅장한 성곽 밖에서는 ‘성스러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역사가 쓰이고 있었다. 교황이 치외법권 지역으로 선포한 뒤 아비뇽은 프랑스에서는 물론 인근 유럽 지역의 범죄자, 부랑자 등이 속속 몰려들면서 온갖 향락과 범죄의 온상으로 변해갔다. 뿐만 아니라 면죄부와 성직을 돈으로 거래하는 주 무대가 되었고, 성직자들은 파문을 무기로 부자와 영주들을 협박한 뒤 거액의 기부금을 요구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기도 했다. 고풍스럽고 웅장한 교황궁과 아비뇽을 둘러보는 일이 찬란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춰보는 것으로는 썩 괜찮은 여정일지 모르겠지만, 행간에 숨어 있는 어두운 역사를 함께 더듬어본다면 아비뇽 여행은 좀 더 깊은 의미를 남겨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교황궁을 빠져나와 성문을 나서면 아비뇽의 또 다른 랜드마크, 아비뇽 다리가 론 강 위에 세워져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아비뇽 사람이 된 듯 잔뜩 멋을 부리며 여유를 즐긴 장소가 바로 론 강변, 이 다리 근처이다. ‘성 베네제 다리’가 정식 명칭인 이 다리는, 1177년 성 베네제와 그의 제자들이 론 강을 가로지르기 위해 건설했다. 1185년 이 다리가 완공되었을 무렵에는 모두 스물두 개의 아치가 이어지며 멋스러운 자태를 뽐냈지만 이후 강의 범람으로 유실을 거듭하다 지금은 반쯤 잘린 4개의 아치와 상판, 중앙의 기도처만 남긴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고 있다. 원래 900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였다고 하니, 교황이 지배하던 아비뇽의 영화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다리 위에 오르면 잔잔한 론 강을 중심으로 좌우의 시가지 풍경과 강변의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의 행렬이 한눈에 잡힐 듯 펼쳐진다. 원래 론 강을 지나는 배들이 충분히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다리의 높이가 여느 옛 다리들에 비해 상당히 높다. 다리에서 내려와 다시 성안으로 들어서면 교황궁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 있는 좁은 골목을 오가며 아비뇽 구시가지를 돌아보게 된다. 중세에 지어진 건물에서부터 17세기의 것에 이르기까지 묵직한 시간의 흔적들이 여행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프로방스 특유의 밝고 환한 정감들이 넘쳐 흐르는 곳이다. 이 프로방스 곳곳에 자리한 레스토랑과 가정의 식탁을 여유와 풍성함으로 완성하는 것은 론 강을 따라 이어지는 농장에서 거둬들인 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아비뇽 역시 코트 뒤 론 지역에서 만든 뛰어난 품질의 포도주가 넘쳐나서인지, 사람들은 아비뇽을 두고 ‘코트 뒤 론 와인의 수도’라고 칭송하기까지 한다. 이 론 강 유역에서 제조한 와인들의 백미인 샤토뇌프뒤파프라는 마법에 이끌려 주인공은 자전거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그의 자전거 여정을 찬찬히 따라가고 있노라면 8월 말의 어느 무더웠던 날 아비뇽의 시내와 그를 둘러싼 프로방스의 작은 마을들을 찾았던 때의 풍경과 인상이 생생히 떠오른다. 언젠가 다시 이곳들을 찾는다면 소설 속 ‘나’처럼 자전거로 프로방스를 꼭 여행하고 싶다. 프로방스는 어떻게 여행하는지에 따라 극과 극의 반응을 낳는 곳이기도 하다. 잠시 휙 하니 지난다면 그저 여유롭고 좋구나 하는 정도에 그치겠지만, 진실된 평가는 며칠을 푹 눌러 있어봐야 얻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뭘 해야 할지 당최 감을 잡을 수 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곳이 될 수도 있지만, 프로방스 여행법을 제대로 아는 이들은 한 달을 지냈어도 다 즐기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그런 곳이다. 아무런 구속도 없이 마을 길을 걷고, 햇살을 피해 몇 시간이건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놓고 앉아 책을 읽고, 자전거를 타고 이웃 마을을 둘러보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하루. 이것이 프로방스에서의 시간이자, 프로방스에 빠져들수밖에 없는 가장 정직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자전거 여행자는 프로방스를 (비록 과정은 험난했으나) 어느 정도 잘 즐겼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Travel Information

아비뇽 가는 법 인천국제공항에서 직항 편으로 파리 도착 후 다시 아비뇽까지는
국내선(약 55분 소요)을 이용한다. 고속철도인 테제베로 갈 수도 있는데, 파리
리옹 역에서 아비뇽 테제베 역까지는 2시간 40분,
아비뇽 센터 역까지는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아비뇽 센터 역에 내리면 도심으로 진입하기 훨씬 편하다.
아비뇽 여행 정보 얻는 곳 아비뇽 관광청(www.avignon-tourisme.com)

기획 여성동아
사진 남기환, 셔터스톡
디자인 박경옥
editor 남기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