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 대통령은 실패했지만…여성 비하는 촛불정신 아니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2-23 1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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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의 프리킥
지난주 일본 외무성이 주최한 ‘여성을 위한 세계총회(WAW)’에 다녀왔다. 27개국에서 각국을 대표하는 여성 공무원, 언론인, 학자, 기업인, 국제기구 종사자들과 일본 여성계 지도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기조연설을 하고 부인 아키에 여사도 “남자보다 소수인 여성 리더들은 자신감을 키우는 내적 훈련이 중요하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행사가 끝나고 분과별 토론에서는 기자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한국 첫 여성 대통령 위기가 여성 리더십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걱정이었다. 최순실 정윤회 고영태 이름까지 꿰던 일본 여성 기업인은 사석에서 “뉴스를 꼼꼼히 보고 있는데 여성 대통령에 대한 성적 모독이 심한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 관심이 많다는 미국 여기자도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머리 손질, 성형, 비아그라, 남자관계까지 대서특필되고 있는데 이유가 뭐냐”면서 “힐러리 이메일 스캔들도 유죄 확정 전까진 ‘무죄 추정 원칙’을 적용받는다”고 했다.


도 넘은 성차별 발언들

 촛불정신은 한마디로 ‘헌법정신 복원’이다. 국가는 국가다워야 하고 그러려면 법치가 구현되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법치로 운영하지 않고 청와대와 정부조직 기업을 부적절하게 통제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마다 친인척 게이트가 터져 나왔을 때 ‘남성 노무현, 남성 이명박’의 실정(失政)이라 하지 않았듯 이번 일도 ‘여성 박근혜’의 실패라 말해선 안 된다.

 유권자들의 표가 생명인 정치인들 입에서조차 여성 비하 발언이 도를 넘었다. 박지원 의원은 “100년 내 여성 대통령, 꿈도 꾸지 마라”고 했고 이재명 성남시장과 유승민 의원도 최순실을 향해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 “강남의 웬 아줌마”라며 여성 비하적인 표현을 썼다. 촛불광장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암탉이 우니 집안이 망했다” 수준은 오히려 점잖은 것이고 “나라를 망친 계집들”식의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막말 성희롱 성차별 발언이 난무한다.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희롱과 막말로 명예와 인격을 훼손하는 것은 실정법 위반이다. 대통령이 직무를 올바로 수행했는지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가기밀인 국가원수 건강정보와 관련해 의료처치, 의약품 공개 등을 둘러싼 미확인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 만난 여성 지도자들은 한국의 평화적 시위에 “감동했다”고 했다. 탄핵 이후에도 법과 이성에 기반을 둔 권력 감시가 이뤄진다면 한국은 다시 한 번 세계의 찬사를 받을 것이다.


비수 꽂는 찌질한 남자들 


 이번 사태 이후 평소 여성에 대해 열린 시선을 갖고 있었던 남성 리더들이 “여자는 역시 리더십에 한계가 있다” “앞으로 여성 간부를 임명할 때에는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여자는 멘털이 약해서 점이나 무당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들을 대놓고 해서 놀란 적이 많다.

 이번 일은 일하는 여성들에게 사회적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주는 계기도 됐지만 남성들 역시 여성들과 어울려 일하는 사회적 훈련이 부족했음도 드러냈다.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 하다가 막상 모시던 상사가 위기에 처하자 “독신 여성 대통령이라 조심스러웠다”고 ‘여성’과 사생활을 거론하며 비수를 꽂는 남성들의 찌질함을 보라.

 한국 최초 여성 대통령은 실패했다. 그렇다고 한국의 여성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여성, 남성 함께 손잡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자!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