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여 나를 보라… 사막-설원 1000km 달린 ‘철의 중년’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2-22 11: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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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대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 이룬 이호연 前 해병대 사령관





지난달 남극마라톤을 끝으로 세계 4대 사막마라톤을 모두 완주한 이호연 전 해병대 사령관이 이순신 동상이 보이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섰다. 작은 사진은 이 전 사령관이 남극마라톤을 완주한 직후 찍은 것이다. 사진=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군복 두 어깨에 별을 달고서야 무엇을 잃어버리고 살았는지 알게 됐다. 직업군인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명예를 얻었지만 군 생활을 돌이켜볼 때 스스로에게 소홀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이호연 전 해병대 사령관(58·해사 34기)은 2013년 전역을 앞둔 어느 날 사무실 책상에 홀로 앉았다. 전역한 뒤 군인 시절 못 이뤄 본 것들을 모아 버킷리스트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한참 빈 종이를 쳐다보던 그는 가장 위쪽에 ‘사막마라톤’을 적어 넣었다.

 이 전 사령관은 ‘철의 중년’으로 불린다. 군인일 때부터 강한 체력을 다져 놓았다. 현역 때인 2002년과 2011년 국제철인경기(수영 3.8km, 사이클 180.2km, 마라톤 42.195km)를 13시간대에 완주했다.

 그는 지난달 말 제7회 남극마라톤대회를 완주하며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전역 후 1년간 사하라, 고비, 칠레 아타카마 사막마라톤을 완주한 그는 남극마라톤을 정복하며 세계 4대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이뤘다. 한국에서는 11번째 완주자다. 그가 달린 모래와 자갈밭, 설원의 거리는 총 1000km에 이른다.

 그는 해군사관학교 34기로 임관한 뒤 해병대 6여단장, 해병대 2사단장을 거쳐 해병대사령관을 지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한 그의 별명은 ‘강철체력’이었다. 사관학교에서 럭비 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군 생활 내내 오전 일과 한 시간 전부터 운동으로 신체를 예열했다. 그래도 현역 시절에는 체력에 자신 있었지만 퇴역 후 사막마라톤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남극마라톤은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사막을 마라톤으로 완주해야 출전 자격이 주어집니다. 식량, 의류, 비상약품이 담긴 10kg짜리 배낭을 메고 250km를 달리는 사막마라톤을 세 번 끝내야 남극을 밟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남극에 가기 전 매일 20km씩 뛰며 체력을 단련했는데도 극한 지역을 달린다는 건 만만치 않았습니다.”

 남극은 접근부터 만만치 않았다. 한국에서 세계의 땅끝 마을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까지 항공기로 약 30시간을 이동한 뒤 3일간 배로 약 1200km를 더 들어간 곳에서 마라톤이 열렸다. 마라톤 일정 자체도 난도가 높았다. 설원에서 하루 8시간을 뛰고 밤새 배로 장소를 이동해 다시 8시간을 뛰는 일정이 6일간 반복됐다.

 “남극은 봄에도 기온이 영하 25도입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 발에 동상을 입어 고생했습니다. 눈밭이다 보니 사방이 온통 흰색으로 보이는 ‘화이트 아웃’ 현상도 겪어 방향표지판을 못 볼 때도 많았습니다. 달리는 내내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 두 번 다시는 안 해야지. 여기서 포기할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의 도전 의식을 자극한 건 청년들의 롤모델이 되어야겠다는 일종의 책임감이었다. 세계 4대 사막마라톤 정복에 나섰던 2014년부터 그에게 ‘도전, 열정’을 주제로 한 강의 요청도 줄을 잇고 있지만 강의료를 모두 청년을 위해 기부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24개국 61명의 사막 전문 마라톤선수가 참여한 남극 대회에서 23등을 했다. 출전자들의 연령이 대부분 30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남극의 설원을 달릴 땐 그렇게 포기하고 싶었지만 목에 완주 메달을 건 순간부터 새로운 극지 마라톤에 참가하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었다.

 “군에선 장병들에게 전투 체력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군의 전투력은 결국 군인 개개인의 체력과 정신력에 달려 있습니다. 젊은 군인들이 저를 보고 체력을 키우길 바랐죠. 사회에 나온 뒤에는 청년들이 저의 모습에서 도전정신과 열정을 찾길 원했습니다. 직접 행동해 그들에게 자극을 주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 달릴 겁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