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복원용 ‘뇌록’ 공사장에 나뒹구는데…손 놓은 문화재청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2-21 10: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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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착기에 깎인 녹색 뇌록 암반 8일 경북 포항시 구룡포읍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 공사현장. 암반 굴착으로 드러난 현무암 지대 위로 마치 붓으로 그은 것처럼 선명한 녹색 띠가 보입니다. 조선시대 단청 등에 녹색 염료로 쓰인 뇌록입니다(위쪽 사진). 아래쪽 사진은 2013년 떨어져 나간 숭례문 단청. 포항=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조선시대 천연 안료(물감)용 광물로 남한 내 유일한 산지(産地)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뇌록(磊綠)’이 경북 포항시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 공사 현장에서 대량으로 발견됐습니다. 2013년 숭례문 부실 복원으로 단청이 떨어져 나간 이후 재시공에 필요한 핵심 재료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도로 공사로 인해 뇌록 암반이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있는데도 문화재청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7개월 넘게 정밀 조사 요청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0일 문화재청과 포항시에 따르면 경북대 암석광물학 연구실이 포항시 장기면과 구룡포읍 일대에서 뇌록 노두(露頭·지하에 매장된 광맥이 지표에 노출된 것) 4곳 등 총 6곳의 뇌록 산지를 발견했습니다. 이 가운데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 공사 현장이 있는 구룡포읍 광정산 동남부 계곡에 가장 많은 양의 뇌록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곳은 2013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포항 뇌성산 뇌록 산지’에서 2km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뇌록은 운모류 광물로 조선시대 궁궐과 사찰의 단청, 그림에 녹색 안료로 사용됐습니다. 뇌록은 귀해서 예부터 국가가 나서 생산을 통제했습니다. 실제 영건도감의궤(營建都監儀軌)에 따르면 1805년 2월 창덕궁 인정전을 중수하면서 경상도 관찰사에게 “장기현(현 포항시 장기면)에서 나는 뇌록 20두(斗)를 조달하라”는 왕명이 떨어졌습니다. 실제로 뇌성산 산지에는 약 15m 깊이의 조선시대 갱도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뇌록이 중요한 것은 2018년 숭례문 단청 복원에 필요한 천연 안료이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2013년에 단청이 떨어져 나간 건 화학 안료와 접착제(아크릴 에멀전)가 목재를 부식시켰기 때문으로 분석합니니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청은 2018년까지 40억 원을 투입해 천연 안료와 아교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로드맵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천연 안료 제조법과 시공법 연구가 마무리돼야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전통 천연 안료의 맥이 끊어져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공사현장에 방치되어 있는 뇌록 원석.
공사현장에 방치되어 있는 뇌록 원석.
공사현장에 방치되어 있는 뇌록 원석.
공사현장에 방치되어 있는 뇌록 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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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연구팀은 올 초 현지 조사에 착수해 3월 연구용역 보고서를 문화재청과 포항시에 제출했습니다. 이어 연구팀은 5월 최종 보고회에서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 관계자들에게 “시추 등 정밀 조사를 통해 뇌록 매장량과 분포 지역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경제성이 떨어진다”라며 지금껏 정밀 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이 도로를 내기 위한 암반 굴착이 진행되면서 파괴된 뇌록 암석들이 공사 현장 곳곳에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실제 8일 찾은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 공사 현장에서는 도로를 내기 위한 암반 폭파 작업이 쉴 새 없이 이어졌습니다. 공사장 곳곳에 어른 팔뚝만 한 것부터 손가락만 한 것까지 다양한 크기의 뇌록 원석들이 특유의 초록빛을 띤 채 널려 있었습니다.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 공사장에서 뇌록 원석 1t을 천연 안료 연구 목적으로 수거해 갔습니다.

경북대 연구팀은 3월 보고서에서 “광정산 일대 뇌록 산지는 산업단지 조성 공사에 따라 상당한 훼손이 진행되고 있으므로 보존 조치가 시급하다”고 밝혔습니다. 연구팀은 정확한 뇌록 매장 보존 구역 설정을 위해 지표 조사는 물론이고 시추와 지구물리탐사, 지표투과레이더(GPR) 등 정밀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새로 발견된 뇌록 산지는 기존 산지와 같은 역사성이 없어 보존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견이 문화재위에서 제기됐다”라며 “단순히 단청 보수를 위해 뇌록을 수집할 거라면 굳이 정밀 조사가 필요하냐는 의견도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블루밸리 산업단지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뇌록이 많이 나오는 구간에 한해 성토 작업을 하지 말고 관람 덱(deck)을 설치하라는 문화재위원회 권고만 전달받은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포항=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