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국가에 도움 된다면 이 한 몸 불 사르겠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2-21 09: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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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다 쏟아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국민이 없는 상황에서 정당이 무슨 소용이고, 비박 친박이 무슨 소용인가"
‌"세계 돌아다니며 실패하는 지도자들에게 조언하곤 했는데 한국이 그런 상황이어서 민망" 
"내가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 배신했다는 비판은 참을 수 없는 정치적 공격, ‌나는 일평생 '배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0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의 뉴욕특파원들과 마지막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이 한 몸 불사르겠다"며 '대권 도전 의사'를 사실상 피력했다.

그는 "대권에 도전할 것인가"는 거듭된 질문에 "31일 10년 간의 총장 임기를 마치면 잠시 휴식을 가진 뒤 1월 중순 귀국해서 국민의 의사를 들어본 뒤 결정하겠다"면서도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며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다음은 이날 회견의 모두 발언과 일문일답 주요내용.

"10년 임기 마무리하느라 두 달 전부터 바쁘게 지냈다. 몸은 피곤하지만, 국제사회에서 10년 노력을 인정받고 있어서 뿌듯하다. 10년간 발전된 한국의 위상이 사무총장 직을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한국 국민의 따뜻한 성원이 아니었다면 10년에 걸친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10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세계적인 변혁기였다. 끊임없는 도전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유엔 책임자로 안보, 경제, 사회, 보건, 특히 인권보호에 노력했다. 11월 4일에 발효된 파리기후변화 협정과 2030지속가능개발목표(SDG) 합의를 이끌어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콜롬비아 내전 종식과 미얀마의 민주화 발판을 만들어 항구적인 평화의 길로 가게 한 것도 보람이다.

현재 국제사회는 과격한 테러와 인종 분쟁 확산 등 심각한 위협에 놓여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청년 실업, 고령화 등 과제도 산적해 있다. 국제사회 당면 과제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정치지도자나 시민단체는 기후변화나 지속가능개발목표를 정책에 잘 반영해서 국제사회와 같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귀국 앞두고 한국의 상황을 보면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촛불로 나타난 민심은 국민의 좌절과 분노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 여러분께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것에 대해 국제사회가 우려하면서도 평가하고 있다. 민주적 헌정 질서에 따라 문제를 극복해서 우뚝 서는 계기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슬기와 단합으로 극복한 지혜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대내외적으로 도전을 받는 상황에서 귀국해서 마음이 무겁다. 한국 공직자로서의 경험, 유엔 사무총장으로 경험 등을 살려서 이제는 한국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깊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10년간 (42.195km의) 마라톤 경기를 마치 100미터 달리기 하듯 뛰었다. 퇴임 후 차분히 생각 가다듬고 국민께 감사 인사드리고 폭넓게 의견 수렴하는 기회를 갖겠다.

-새누리당에 입당해서 당을 재건하고 분열을 치유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나.

"고국이 처해 있는 어려움을 감안하고 세계정세가 급변하고 있는데 보조를 맞춰 가면서 안보도 확고히 하고 경제 사회도 발전하려면 국민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선정(善政)의 결핍에 대해 분노와 좌절을 느끼고 있다. 사회에 쌓였던 적폐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회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많은 요청을 듣고 있다.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기여할 것인지 깊이 고뇌하면서 생각하고 있다. 정치라는 것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수단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서울의 정치 상황이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1월 중순 귀국해서 각계 지도자 만나보겠다는 것이다. 국민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 우려와 실망감, 좌절감은 현재 정치를 하고 계신 분에 대한 여러 불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 여러분의 진솔한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민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반 총장과 관련해서는 반 총장의 오늘을 만들어준 노무현 정부를 배신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국가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배신당했다'고 표현했다.

"국민이 선정의 결여에 대해 배신감 느낀다고 한 것은 박 대통령을 포함해서, 어떤 특정인을 언급한 것이 아니다. 촛불은 시스템의 잘못, 지도력의 잘못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배신이라고 비난하는 건 정치적인 공격이라고 본다. (노 전 대통령과의) 신뢰가 없었다면 사무총장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밑에서 일하기 전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생면부지였다. 그런 저를 외교 보좌관으로 발탁하고 외교장관, 유엔 사무총장까지 되게 도와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묘소에 참배를 했느냐 안 했느냐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2011년 부산 국제회의 때 참배를 했다. 권양숙 여사와도 얘기하며 조의를 표했다.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매년 새해가 되면 권양숙 여사께 전화를 드렸다. 기회 있을 때마다 전직 국가원수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했다. 배신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정치적인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배신을 모르고 살았다.

-한국 정치권에서 나오는 중간지대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를 완전히 대통령 후보라고 생각하고 질문하시는데 아직도 임기 끝날 때까지 11일이나 남아 있다. 대외적으로 그런 말씀을 드리기 어렵다.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 미력한 힘이지만 어떤 계기가 되던지 국가의 발전을, 국민의 복리증진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하면 몸 사리지 않을 것이다. 건강이 받혀주는 한 국가를 위해서 노력할 용의가 있다.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는 아직 잘 모른다. 현재 서울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복잡하다. 나는 정치도 잘 모른다."

-국민의 의사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국민이 원하면 대선에 출마할 것인가.

"유엔 사무총장 역임하면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이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이) 한 몸 불살라서 노력할 용의가 있다. 어떻게 할 것인지는 귀국 후 각계 국민들을 만나서 말씀 들어보고 결정할 것이다."

-2006년 11월 국회 연설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유지에 대해서는 사무총장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조속한 시실 내에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이고, 다음 한국인 사무총장이 나오려면 몇 백 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약속한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해 많은 국민이 실망하고 있다.

"질문에 공감한다.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북한을 방문해서 북한 최고 당국자와 협의를 해서 한반도 긴장 완화와 화해를 도모해서 통일로 가는 기반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노력을 했고 북한과의 채널도 유지해 가면서 이야기해왔다. 세 번에 걸친 방북기회가 북측의 일방적인 취소로 이뤄지지 못했다. 남북 관계를 보면 이유를 잘 알 것이다. 북한 당국이 (나를) 유엔 사무총장으로도 보지만 한국 출신이라는 데 신경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간 신분이 되면 지금보다 제약이 있겠지만, 전직 사무총장으로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누차 말씀을 드렸지만 현재 북한만 핵 및 탄도미사일 개발에 많은 자원을 쓰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북한이 더 늦기 전에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만남 성사는 어떻게 돼가고 있나.

"11월 11일 10여 분 통화하면서 '다음에 만나서 여러 문제를 협의하자'고 했을 때 (트럼프 당선인이) '대단히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그 이후에 면담일정을 통보 받지 못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씀드릴 순 없지만 트럼프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난 이후에 어떤 국제 지도자도 만나지 않고 있다. '한 명의 대통령 원칙' 때문 아닌가 싶다. 내년 1월20일까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국가원수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외국 지도자와 안 만나는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트럼프 측 관련 인사나 단체를 통해서 한미 안보의 중요성이나 기후변화, 유엔과 미국의 협조 중요성을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임기가 10여 일 남았기 때문에 (트럼프와의 면담 성사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새마을운동을 대단히 좋게 평가했는데 이를 놓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지나치게 우호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새마을운동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농촌사회의 국민의식도 개조하면서 지역도 발전시키는 광범위한 사회적 운동이었다고 국제사회가 평가한다. 새마을운동에 대해서 특별한 지도자를 찬양한 것은 아니고 제가 보고 느낀 것을 말씀을 드린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전에도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새마을운동 전수해 달라고 했다. 개발도상국가들이 배우고 싶어한다. 정상외교를 통해서 하면 더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퇴임 후 글로벌 외교 지도자로서 국제사회에 기여할 생각이 있나.

"열린 마음이다. 글로벌한 이슈에 대해 기여할 수 있다면 참여할 것이다. 현 단계에서는 제가 자라고 태어난 조국에 기여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국내적인 일도, 국제적인 일도 겸해서 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어떤 지도자상이 필요한가.

"유엔 사무총장 10년 하면서 많은 나라의 많은 정상들을 만났다. 정확하게는 기억 안 나지만 1년에 국가 정상 300¤400명씩 만났다. 전화통화도 300¤400번 한다. 많은 나라를 방문했다. 계산해 보니 (유엔 회원국 193개 국 중) 150여 개국 방문했다. 실패한 지도자들에게 우선 국민의 염원과 고충을 진솔하게 듣고 국민과 소통하라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는 정치인이 정파적 계층적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민족 전체, 국민 전체를 봐야한다고 말한다. 세 번째는 모든 이해 당사자와 포용적으로 대화해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화합과 통합, 포용적 대화를 해야 진정한 지도력이 나온다. 그것이 리더십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뜻밖에 (그런 문제들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국민이 촛불을 들고, 이렇게 되니 상당히 민망하다. 다른 지도자들이 한국 상황을 물어보면 '한국은 오랜 역사를 통해 위기가 많았지만 국민이 단합해서 슬기롭게 현명하게 극복했다'고 대답하는 방법밖에 없다. 한국이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상당히 참담한 심정으로 귀국한다. 자랑스럽게 돌아가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제사회에서 환영받고 찬사도 받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가슴이 무겁다.

-한국의 리더십은 왜 실패했다고 생각하나. 한국에서 성공한 리더십이 있었나.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수백만 국민이 그들의 희망, 염원, 분노를 나타냈다고 본다. 정치 지도자, 사회지도자들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분석해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4·19도 거쳤고 광주민주화항쟁, 6월 항쟁도 거쳤다. 군사독재도 거쳐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부를 세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회적 적폐가 쌓여 있다. 이런 적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 같이 진솔하게 검토해서 고쳐야 한다.

국민이 없는 상황에서 정당이 무슨 소용인가, 비박, 친박이 무슨 소용인가. 저는 저 자신을 낮추고 사적인 생활은 없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오로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뛰었다. 능력 부족으로 다 성취하지는 못했고 모든 비판이나 칭찬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앞으로 어떤 계층과도 시간 장소 가리지 않고 만나겠다.

-귀국 일정은.

"1월 2일이나 3일까지 현재의 사무총장 관저에서 머물러 있다가 잠시 생각도 하고 휴식 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안 보이는 데서 쉴까 생각 중이다. 여러 할 일이 있지만 현재 벌어지는 일정 때문에 개인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생각할 여유를 갖고 1월 중순쯤 귀국할 것이다. 정확한 귀국 날짜는 아직 잡지 않았다.

-귀국하면 박 대통령을 만날 계획인가.

"국가원수에 대한 예의상 당연히 만나야 되는데, 탄핵소추가 의결된 상황이어서 총리에게 대통령권한을 맡겼으니 일단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을 예방하고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 3부 요인에게도 귀국 신고를 할 것이다. 그 전에 국립묘지의 호국영령들을 참배하고 아버님 산소를 찾고, 고향에 계신 노모(어머니)에게 귀국인사를 드릴 것이다. 그 이후에 세부 일정을 잡아 진정한 민의가 무엇인지 들어보도록 노력할 것이다."

뉴욕=부형권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