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전락 ‘괴물투수’가 판사에게 보낸 ‘참회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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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2016-12-20 20: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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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야구선수 A씨가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에게 보낸 편지.© News1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News1
(부산ㆍ경남=뉴스1)  지난 11월 7일 겨울의 시작인 입동에 부산가정법원 천종호 부장판사는 자신이 10여 년 전 부산지법 동부지원 배석판사로 있을 당시 재판을 받았던 한 소년의 소식을 우연히 언론보도를 통해 접했다.

천 판사는 ‘조폭 전락 괴물투수…벌금형’, ‘야구 기대주 조폭 전락…공갈로 실형’ 등의 내용의 뉴스를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천 판사는 2002년 9월 동부지원에서 9건의 일명 ‘퍽치기’ 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된 A씨(현재 29세)의 모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135km의 강속구를 뿌리며 야구에 재능을 보였던 A씨를 포기할 수 없었던 A씨의 아버지는 피해자들과 원만히 합의해 1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항소심에서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A씨는 사회로 복귀해 야구에만 전념하며 고교시절을 보냈다.

이후 A씨는 2006년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4경기 28이닝 연속 무실점 호투를 기록했고, 졸업 이후 국내 명문 프로야구단에 입단해 시범경기에서 호투를 펼치며 국내 정상급 투수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이며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A씨가 유년시절 저지른 ‘퍽치기’ 전력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A씨의 범죄전력을 인터넷에 올렸고, 이후 한국야구위원회(KBO) 홈페이지 등에도 ‘퍽치기 전과자 투수’라며 A씨를 비난하는 글로 뒤덮였다.

그 결과 A씨는 정규시즌에 마운드를 밟지도 못한 채 2007년 4월 야구장을 떠났다.

야구뿐만 아니라 싸움도 잘해 부산에서는 ‘통’이라고 불렸던 A씨는 군 제대 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막노동, 잡일 등을 전전하다 막다른 선택(조직폭력단체 가입)을 했다.

암흑세계로 들어간 A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전과가 늘었고, 현재 부산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이에 천 판사는 A씨의 사연이 담긴 책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에 “A씨, 힘들 때마다 아버님의 기도와 노고를 기억해 보시기를 바라며 이 책을 드립니다”라는 손편지를 적어 구치소로 보냈다.

A씨는 천 판사의 책을 받아보고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버지가 생각나 눈물을 흘렸다.

이후 A씨는 천 판사에게 “판사님 제가 훌륭한 야구선수가 돼 좋은 모습으로 뵀어야하는데 부끄럽습니다. 10여 년 전 은혜와 감사인사를 염치없이 이제야 드리게 돼 죄송합니다”라며 참회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A씨가 천 판사에게 “제가 수감중 아버지가 간경화로 돌아가신 뒤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몸이 편찮은 어머니와 6살 된 아들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악착같이 살았습니다”며 “막노동 잡일 다하다 뒷골목(조직폭력단체)으로 접어들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이곳도 떠났습니다”고 적혀있다.

편지에는 “저는 앞으로 제 아버지가 저에게 베풀었던 것만큼 아들에게도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며 “또 제가 이루지 못한 야구의 꿈을 아들이 펼칠 수 있도록 키우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제가 수도 없이 노력하고 또 하겠습니다”라고 씌어 있다.

최근 A씨의 편지를 받은 천 판사는 자신의 SNS에 “비록 A씨의 죄질이 무거웠다고는 하나 이미 법에 정한 처벌을 받은 일로 그를 비난하는 대신 그에게 마운드에 설 기회를 주었더라면 우리는 또 한 사람의 뛰어난 야구선수를 얻었을지도 모른다”며 “그랬더라면 그 또한 자신에게 관용을 베푼 사회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더욱더 열심히 운동에 전념하고 선량한 시민이 되어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쉬움에 가슴이 아려왔다”고 적었다.

천 판사는 “A씨가 이제부터라도 보통의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책임감 있는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학수고대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ㆍ경남=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