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직언한 남재준 원장, 최순실 그룹과 충돌해 경질”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2-19 09: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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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종로구 내수동 미래전략연구원 사무실에서 만난 구해우 이사장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통일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핵심적인 선결 조건이 확고한 한미동맹”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비선 그룹이 중국의 지원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켜 대박 통일을 이루겠다는 주관적 바람에 기인해 한미동맹의 기초를 흔들어 놓은 건 심각한 과오”라고 평가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진영 기자의 필담
‌“남재준 원장, 親中 노선 반대하고 최순실 그룹과 충돌해 경질된 것”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전 국가정보원 북한담당기획관
 문화 체육 분야만이 아니다.  나라의 존립을 좌우하는 외교안보 정책에도 비선 그룹이 관여했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주도했던 남재준 초대 국가정보원장이 비선 그룹을 조사하다가 경질됐다고 세계일보가 15일 보도했다. 신동아 12월호는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해 “대북정책은 정호성(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다 했다”고 폭로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남 전 원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현 정부가 출범한 해인 2013년 5월 1일부터 이듬해 1월 7일까지 국정원 1차장(해외 및 북한 담당) 산하 북한담당기획관(1급)을 지낸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52)은 “국정원직원법상 구체적인 정보를 밝히긴 어렵다. 하지만 대북 및 외교정책에 정윤회와 정호성이 상당 부분 개입한 것은 맞다”고 증언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가장 큰 문제로 친중(親中) 노선을 지목하면서 “도널드 트럼프라는 역대 최강의 ‘마초형’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등장한 상황에서 친중 정책이 대가를 치르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려대 법대 재학 시절 주사파 리더로 주체사상을 공부하면서 북한과 인연을 맺었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의 수배를 받던 사람이 국정원 1급 공무원이 된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0년 9월∼2002년 1월 SK텔레콤에서 남북경협 담당 상무를 지냈다. 고려대에서 북한 개혁·개방을 주제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0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박세일,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를 도와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미래전략연구원을 만들어 16년째 운영하고 있다.  “대북 정책에 정윤회 정호성 관여”  ―국정원에 있을 때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 있었나.  “당시 최순실은 심부름하는 집사 비슷한 역할이었고 대북이나 외교안보 정책에 관여한 건 정윤회, 그리고 문고리 3인방 중에선 정호성이었다.”  정윤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비서실장으로 보인상고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관광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호성은 경기고와 고려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했고 고려대 정치학 석사다.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엔 정무기획 담당을 했다.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은 최순실이 고쳤다던데….  “연설문에 코멘트 한 정도일 것이다. 최순실은 2014년 말부터 분탕질한 거고 분야도 문화 체육 분야에 제한돼 있다.”  ―‘통일은 대박’이라든가, 드레스덴 구상도 정윤회와 정호성의 아이디어였나.  “(즉답을 피한 채) 국방장관, 외교장관, 안보실장 모두 단 한 번도 자기 소신을 갖고 정책 결정을 하지 않았다. 모두들 심부름꾼 역할만 했다. 자기 소신대로 논쟁하고 직언한 사람은 남재준 전 원장이 유일하다.”  ―그러다가 경질된 건가.  “최순실 그룹과 충돌이 있었다. 정부가 미국보다 중국 쪽에 가까워지는 데 대해 반대했던 것도 경질 사유이다.”  -신동아 12월호에는 문고리 3인방이 세월호 문제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국정원에 요구했는데 남 전 원장이 ‘국내 문제에는 개입할 수 없다’고 거절해 경질됐다고 나온다.  “그 부분은 잘 모른다.”  남 전 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과 탈북 위장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파문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었을 때도 건재했던 그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5월 김장수 당시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전격 경질됐다. 김 전 실장은 이후 주중 대사로 재기용됐지만 남 전 원장은 돌아오지 못했다.  “남 전 원장은 대통령에 이어 현 정부의 2인자였다. 남 전 원장 시절 국정원 차장급 인사는 대통령이 했지만 1급은 원장이 했다. 이후 이병기 전 원장, 이병호 원장 모두 1급 인사를 단 한 명도 못 했다. 모두 청와대가 좌지우지했다.” “앞으로 친중 정책의 대가 치를 것”  ―보수 정권임에도 왜 중국 쪽에 기울었나.  “정윤회나 정호성은 모두 세계 질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정서적으로는 반미(反美)였던 것 같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박 대통령과 최태민의 관계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박정희 시해사건 당시 미국의 사주를 받았다는 말이 있었으니. 그리고 박 대통령을 통일국가의 여성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했다. 중국이 도와주면 가능하지 않을까 ‘wishful thinking’(희망에 근거한 생각)을 한 거다.”  ―남 전 원장도 2013년 12월 국정원 핵심 간부 송년회에서 ‘2015년 통일을 위해 다 같이 죽자(열심히 하자는 뜻)’고 했다던데, 사실인가.  “그렇다.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 후 다들 북한이 곧 붕괴될 것처럼 얘기했다. 난 장성택 숙청 후 오히려 북한 체제가 안정될 거라고 예상했다. 이런 견해차로 남 전 원장과 사이가 벌어졌다. 그 송년회에 1급 간부들이 다 참석했는데 난 부르지도 않았다. 2014년 1월 7일 사직서 쓰고 나왔다.”  ―결과적으로는 구 이사장의 예상이 맞았지 않나.  “장성택은 야심이 큰 사람이었다. 2009년 5월 2차 북핵 실험 후 중국은 북핵과 북한 문제를 분리해 북핵 문제는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북한 문제는 친중 정부를 세워 해결하자는 전략을 세웠다. 친중 세력을 만드는 데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장성택이다. 장성택의 세력이 커지자 북한의 주류인 노동당 서기실이 잘라낸 거다.”  ―올 3월 세미나에서 북한은 노동당 서기실 중심의 집단지도 체제로 김정은은 형식적 수령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했다. 일종의 ‘얼굴 마담’이라는 건데….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죽은 지 석 달도 되지 않은 2012년 2월 29일 북-미 간 2·29 합의가 이뤄졌다. 김정일이 죽은 직후 중요한 합의를 한 것이다. 이걸 김정은이 컨트롤했을까. 재벌권력도, 정치권력도 지켜봤지만 그렇게는 안 된다. 이미 시스템이 구축돼 있었던 거다. ”  ―올 9월 뉴욕타임스가 김정은을 “합리적인 인물(too rational)”, 월스트리트저널이 “노련한 독재자(very skilled dictator)”라고 보도했는데 이는 집단지도 체제이기에 가능한 평가였을까.  “그렇다. 김정은 참수 작전을 통한 북한 정권 교체 시도는 실효성이 없다. 북한 붕괴론이나 북한 정권 교체론에 근거한 대북정책으론 안 된다. 합리적인 집단지도 체제가 가동한다는 걸 전제로 전략을 짜야 한다.”  “사드, 미국 보복은 두렵지 않나”  ―북핵 위기의 해법으로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 운운했는데, 우리가 레짐 체인지를 하게 됐다. 국정 공백기여서 안보 위기에 대한 우려가 크다.  “‘트럼프 쓰나미’가 몰아닥칠 것이다. 트럼프 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경제적인 국익을 우선시하는 경제민족주의(economic nationalism)다. 트럼프는 이를 실행할 외교 수장(首長)으로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를 지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17년 지기인 틸러슨의 등장이 뜻하는 또 다른 하나는 미국의 주요 경쟁국이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트럼프를 거의 유일하게 지지하는 정통 외교 관료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그는 1979년 미중수교의 1등 공신이다. 당시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손잡은 것이다. 그랬던 키신저가 이번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태도로 바뀌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미중 사이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사드는 1차적으로 주한미군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 예산으로 자국민을 보호하겠다는데 이걸 반대한다. 트럼프는 미국우선주의자에 포퓰리스트(인기영합주의자)다.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는 거다. 사드는 외교적 이슈이기도 하다. 2013년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등장하면서 중국은 미국의 본토 접근을 막기 위해 반(反)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세웠는데 그 두 가지 축이 동북아의 사드와 남중국해 영유권이다. 사드를 배치하지 않으면 중국의 이 전략이 먹히고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쇠퇴한다. 한미동맹이 와해되는 것이다. 트럼프는 신사가 아니다. 계산기 두드려보고 죽일 수도,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  ―사드가 배치되기도 전에 중국은 경제적 보복을 하고 있다.  “왜 중국만 보복을 할 거라고 생각하나. 사드 배치 안 하면 미국은 가만히 있을까. 미국은 중국처럼 보복한다고 말하고 하는 나라도 아니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지난번 인터뷰 때 ‘아베노믹스가 미국이 엔화 평가 절하를 눈감아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친중 정책 덕분에 경제가 나아졌나. (미국과 가까웠던) 일본이 경제적으로는 더 좋았던 것 아닌가. 내년 대선에서도 사드가 핵심 이슈가 될 것이다. 야당에선 정권 교체를 기대하지만 총선은 심판이고, 대선은 미래를 보는 선거다. 박근혜 심판은 이미 했다. 탄핵안을 국회에서 가결했고, 정유라도 퇴학됐다. 사드 배치 반대는 한미동맹 깨자는 얘기인데 중국에 종속적인 국가로 가자고? 그런 야당을 박 대통령이 밉다고 해서 국민들이 찍어줄까?”  ―트럼프 쓰나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한미동맹을 토대로 정보, 경제, 안보적 자강(自强)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정보적 자강을 위해서는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는 국가의 정보 기능과 사정 기능이 마비돼 터진 거다. 정보기관이 보고하고 사정기관에서 잘라내야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는데, 국정원이 몰랐을 리 없다. 그건 또 다른 죄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정보기관 역량을 강화하면 엉뚱한 사람에게 밥상 차려주는 꼴이 된다. 개혁을 전제로 해야 한다. 미국처럼 해외·북한 파트와 국내 파트를 나눈 뒤 기소권과 공소유지권은 검찰이 갖고, 나머지 수사권은 미국의 연방수사국(FBI) 같은 조직이 갖도록 해야 한다. 지금 한반도는 트럼프, 푸틴, 시진핑, 아베 신조 등 역대급 마초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죽어 있다시피 한 정보수집 기능부터 살려내지 않으면 언제 팔다리가 잘려 나갈지 모른다.”   이진영 기자 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