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시인에겐 죽음마저 밝고 쾌활하다..‘연옥의 봄’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2-09 10: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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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시인은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호기심처럼 삶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없다”라면서 “앞으로도 마른 데 진 데 가리지 않고 두근거리겠다”고 밝혔다. 그의 창작 동인은 그런 활발한 시적 호기심에서 나오는 듯싶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열여섯 번째 시집 ‘연옥의 봄’ 펴낸 황동규 시인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은 채 갈 거다
마음 데리고 다닌 세상 곳곳에 널어뒀던 추억들
생각나는 대로 거둬들고 갈 거다
개펄에서 결사적으로 손가락에 매달렸던 게,
그 조그맣고 예리한 아픔 되살려 갖고 갈 거다’

(‘연옥의 봄4’ 중에서) 


황동규 시인(78)의 ‘연옥의 봄’ 연작은 자연스럽게 ‘풍장(風葬)’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인이 40대에 쓴 ‘풍장’ 연작도 ‘연옥의 봄’처럼 죽음에 대한 시입니다. 

‌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손목에 달아 놓고/아주 춥지는 않게/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전자시계보다 진보한, 휴대전화와 함께하겠다는 변화 외에도 70대의 시인이 쓴 ‘연옥의 봄’은 ‘풍장’보다 명랑합니다.

 죽음이 이렇게 밝을 수 있을까요. 그가 처한 나이는 가까운 벗들을 하나둘 떠나보내는, 소멸을 피부로 느끼는 때입니다. 실제로 새 시집엔 시인이 직접 부대낀 죽음의 장면들이 눈에 띕니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문우(文友) 김치수 평론가의 병상을 찾은 시간을 회고하며 쓴 ‘발’, 여행 중에 아끼던 제자의 부고를 듣고 쓴 ‘그믐밤’ 등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시편들이 슬프거나 쓸쓸하지 않고 쾌활합니다.

 5일 서울대 명예교수연구동에서 만난 시인은 “‘풍장’을 쓸 때부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습을 많이 한 셈”이라며 “예전보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더라. 죽음에 대해 관대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연옥의 봄’은 열여섯 번째 시집입니다. 그는 3, 4년마다 새 시집을 펴냈습니다. 시의 활력이 늘 넘쳤을 것 같은 그이지만, 오랫동안 강단에 섰던 시인은 교수로 일하면서 시를 쓰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예술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기에 가르치는 것과 예술 하는 것은 싸울 수밖에 없어서”였습니다.

 그는 “오히려 은퇴하고 쓴 시가 더 좋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고 했습니다. “전에는 시어(詩語)가 탁탁 나왔는데 이제는 시어를 찾고 고민해서 써야 한다”며 변화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    ‘닳고 닳은 문지방 너머로 나이 든 삽살이 하나가 다가와/’어떻게 오셨습니까?’/ 목에 줄만 없었다면 머리 쓰다듬고 같이 들어가/주인과 인사 나누고 잠시 툇마루에 걸터앉아/오가는 생각들을 하나씩 둘씩 뭉개고 싶은 곳./모르는 새 너와 나가 사라지고/ 마당과 가을빛만 남는다’(‘북촌’)

 이런 시구는 편안히 쓰인 듯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시인이 공들여 고른 시어의 섬세함이 돋보입니다.

 고교 때까지 작곡가를 꿈꿨지만 발성 음치라 음악을 하긴 어렵겠다는 생각에 “음악과 가장 가까운 시를 선택한 것이” 시력(詩歷) 58년을 쌓았습니다. 그는 가수 밥 딜런이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된 데 대해 “가사도 문학적이고…나도 노래를 종종 따라 불렀다”며 노벨 문학상을 받을 만하다고 평했습니다.

 시인은 어쩌면 이번 시집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시라는 게 짧은 공간 속에 의미를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다. 조금만 허술하면 ‘싱거운’ 얘기가 돼 버린다.”

 노 시인은 “(시를) 빚는 힘이 없어진다면 싱거운 시는 더 이상 쓰지 않을 것”이라며 엄격한 창작관을 내보였습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