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서 천당으로…눈물 흘린 서정원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2-05 10: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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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챔피언” 축구협회(FA)컵에서 6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프로축구 K리그 수원 선수들이 3일 결승 2차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승컵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서정원 감독(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수원의 자존심을 지키자는 생각으로 선수들과 하나로 뭉친 덕분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뉴시스
올 시즌 ‘추락한 명가’라는 불명예에 시달렸던 프로축구 K리그 수원이 축구협회(FA)컵 우승으로 자존심을 세웠습니다. 수원은 FC서울과의 FA컵 결승 1, 2차전 합계 3-3을 기록한 뒤 연장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지만 승부차기에서 10-9로 이겼는데요. 통산 4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한 수원은 포항과 함께 대회 최다 우승팀이 됐습니다.


○ ‘천당과 지옥’ 오간 서정원 감독

 FA컵 결승 2차전 후반 추가 시간 FC서울의 역전골이 터지자 서정원 수원 감독의 표정은 굳어졌습니다. 1차전에서 2-1로 승리한 수원은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관중 3만5037명·FA컵 역대 3위)에서 비겨도 정상에 오를 수 있었지만 1-2로 패해 연장전에 돌입했는데요. 이때 서 감독은 ‘악몽이 반복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수원은 올 시즌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에서 ‘뒷심 부족’으로 경기 종료 직전 실점하며 승리를 놓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데요. 서 감독은 7월 2일 울산과의 경기에서 후반 추가 시간에 2골을 내주며 1-2로 패한 뒤에 구단 버스를 가로막은 팬들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 감독의 우려와 달리 수원은 승부차기 끝에 서울을 꺾고 6년 만에 FA컵 왕좌를 탈환했습니다. 2013년 수원 사령탑에 오른 뒤 첫 우승을 차지한 서 감독은 눈물을 흘리며 “한 시즌 동안 힘들었던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축구를 하면서 이렇게 힘든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전후반 90분은 부진했던 올 시즌 리그(클래식)와 같은 내용으로 흘러갔지만 최종 결과는 달랐습니다. 마지막에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는데요. 2002년 수원의 주장으로 팀에 첫 FA컵 우승을 안기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던 그는 사령탑 첫 우승도 FA컵에서 달성했습니다. 서 감독은 “선수로 우승했을 때보다 이번 우승이 더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K리그 4회 우승을 차지한 ‘명가’ 수원은 2014년 모기업이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넘어가면서 운영비가 축소돼 전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올 시즌에는 스플릿 라운드 제도 도입(2012년) 이후 처음으로 하위 리그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은 끝에 7위로 시즌을 마쳤고요. 서 감독은 “FA컵 우승에도 실패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감독으로서 책임을 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책임에서 완벽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6년간 우승에 목말라했던 팬들에게 조금이나마 기쁨을 드린 것 같아 다행이다”고 말했습니다.

 수원은 3억 원의 우승 상금과 함께 내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진출권을 획득했는데요. 서 감독은 “예산이 축소된 탓에 핵심 선수들이 이탈하면서 팀을 지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면서 “ACL에 진출한 만큼 어느 정도 선수층을 갖춰야 한다. 이런 부분에서 구단이 지원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수원의 FA컵 우승을 결정짓는 승부차기 키커로 나선 수원 골키퍼 양형모. 사진=뉴시스

○ 운명 갈린 승부차기

 프로축구 최대 라이벌 수원과 서울은 승부차기도 명승부였다. 양 팀은 5명씩 승부차기를 하고도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이후 서든데스에 돌입했지만 팀당 4명이 추가로 나설 때까지 실패한 선수는 없었다. 필드 플레이어가 모두 골을 성공시킨 가운데 마지막 10번째 키커로 골키퍼들이 나섰다.

 먼저 찬 쪽은 서울 유상훈. 그는 올해 우라와 레즈(일본)와의 ACL 16강 2차전 승부차기에서 상대 키커 2명의 슈팅을 막아내며 탈락 위기에 처한 서울을 구했던 골키퍼다. 이때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 ‘승부차기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이날 승부차기에서 9명이 차는 동안 한 골도 막지 못했던 유상훈은 키커로 나서 골대를 넘기는 실축을 한 데 이어 수원 골키퍼 양형모의 슛도 막아내지 못했다. 양형모는 2014년에 프로 유니폼을 입었지만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지난해 3부 리그 격인 내셔널리그 용인시청으로 임대됐다. 올 시즌 수원 복귀 뒤에도 후보였지만 6월 11일 인천과의 경기부터 선발로 나서기 시작하며 서 감독의 믿음을 얻었다. ‘사실상 신인’으로 ‘승부차기의 신’과의 대결에서 이긴 양형모는 “나까지 차례가 오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별 생각 없이 찬 덕분에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결승 1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던 수원 주장 염기훈은 FA컵 MVP에 선정됐다. 그는 FA컵 사상 최초로 2차례 MVP를 차지한 선수가 됐다. 서울 공격수 아드리아노는 결승 2차전에서 1골을 추가해 한 시즌 개인 최다골 기록(35골)을 세웠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 이승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