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이 '절대신봉'했던 '변 도사'를 아시나요?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1-30 11: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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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종남 기자가 쓴 책 ‘종횡무진~’… “金감독 판단 좌지우지한 사람” 소개
‌약 몇첩으로 암도 간단하게 고쳤다는 신통력 있는 의술로 金감독 사로잡아
‌OB 떠날 때 태평양을 선택한 것도 오대산훈련도 그의 뜻 따른 거라는데…  


1989년 1월 강원도 오대산으로 전지훈련을 떠난 프로야구 태평양 선수단이 맨발로 눈밭을 뛰고 있다. 사진=한국야구위원회(KBO)
변 도사를 아십니까. 이 문장을 읽고 김성근 한화 감독(74)부터 떠올린 독자라면 진짜 프로야구 마니아라고 자부해도 좋습니다. 변 도사는 1980년대 김 감독이 OB(현 두산)와 태평양 감독을 맡고 있을 때 믿고 의지했다는 도인입니다.

어쩌면 믿고 의지한 것 이상인지 모릅니다. 야구 전문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고(故) 이종남 기자는 숨지기 한 해 전인 2005년 펴낸 책 ‘종횡무진 인천야구’에서 변 도사를 “김 감독의 판단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1988년 시즌이 끝난 뒤 OB를 떠나기로 한 김 감독이 ‘서울 라이벌’ MBC(현 LG) 대신 인천 연고 팀 태평양을 선택한 것은 “서쪽으로 가시오”라는 변 도사의 말 때문이었고, 태평양에서 그 유명한 ‘오대산 극기 훈련’을 한 것도 변 도사의 권유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이 기자는 “만약 그가 우악스러운 훈련 대신 리듬체조를 권했다면 태평양 선수들은 따뜻한 체육관에서 겨우내 리듬체조를 했을 것이다. 만약 김 감독이 MBC행을 택했더라면 오대산에서 눈밭을 뒹굴고 얼음구덩이에 풍덩 몸을 던져야 했던 선수들은 태평양이 아닌 MBC 선수들이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도대체 변 도사는 어떤 인물일까요? 책에 따르면 변 도사는 정식 이름이 변영호로 1950년 계룡산 입구에 있는 충남 천안시 성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외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혁운 스님을 따라 산에 들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무상심법(無常心法)이라는 정신수련과 금불도(金佛道)라는 체력단련술을 익혔습니다. 성인이 된 뒤에는 대만으로 건너가 동양의학 박사 학위를 땄고, 의술이 뛰어나 암(癌) 정도는 약 몇 첩으로 간단하게 고쳐 놓았다는 것이 변 도사의 주장이었다고 합니다. 또 진맥을 한 번만 해도 “낙태 수술 두 번 받으신 적 있으시죠?”라고 대답하기 곤란한 것까지 척척 캐내는 신통한 솜씨를 지녔다고 자랑했다고도 합니다.





한화 김성근 감독
 김 감독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당시 OB 투수였던 계형철 한화 코치(63)가 소개해 만난 자리에서 변 도사는 김 감독에게 “감독님은 간이 안 좋으시군요. 얼마 전에는 가슴이 울렁거리는 증상을 겪으셨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족집게 진단이었습니다. 김 감독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책에 따르면 김 감독은 원래 ‘신통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존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그의 말을 절대 신봉하는 스타일’입니다.

 이때 변 도사가 김 감독 마음에 아예 돗자리를 깔아 버리는 기술을 발휘합니다. 변 도사는 “약을 지어 드리겠다”라고 한 뒤 “돈 걱정은 마십시오. 돈은 안 받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병세가 위중한 재벌에게 치료비를 두둑하게 받는 대신 나머지는 무료로 치료해 준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날 이후 OB에서는 전담 트레이너(물리치료사) 대신 변 도사가 그날그날 선발 투수의 몸을 만져 주는 일이 흔한 풍경이 됐습니다. 몇몇 타자는 변 도사에게서 기를 받은 덕분에 홈런을 쳤다고도 했습니다. 태평양 선수들도 오대산 훈련을 경험하고 나서 창단 후 처음으로 ‘가을야구’ 맛을 봤으니 변 도사가 정말 신통방통했던 인물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아, 물론 이 모든 건 어디까지나 야구 이야기입니다. 혹시 파란 지붕 아래 사시는 어떤 분을 떠올렸다면 억측입니다. 억측!
  

황규인 기자 페이스북 fb.com/bigk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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