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물길 따라 '싱크홀' 생긴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1-30 10: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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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세종시 나성동에서 이홍종 고려대 교수가 백제 도시유적 발굴 당시를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의 등 뒤로 5세기 백제 도시의 기반이었던 금강이 보입니다. 세종=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1600년 전에 거대한 호수공원이라니….”

2010년 10월 초 충남 연기군 나성리(현 세종시 나성동) 발굴 현장. 밤새 내린 가을비로 유적이 물에 잠겼다는 보고를 듣고 부랴부랴 현장을 찾은 이홍종(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58)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백제시대 도시 유적 한가운데 U자형의 거대한 호수가 주변 언덕 위 집터와 더불어 장관을 이뤘습니다. 1.5m 깊이의 호수는 최대 너비 70m, 길이 300m에 이르렀습니다.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은 꼴이 마치 현재의 경기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을 연상시켰습니다.

출토 양상도 이 구덩이가 도심의 경관용 호수라는 판단을 굳히게 했습니다. 당초 그는 이곳을 강물 근처 단구(段丘)에 있는 저습지로 보고 목간 같은 쓰레기가 잔뜩 쌓였을 걸로 봤습니다. 그래서 발굴조사원들에게 “유기물질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지시했는데 정작 구덩이 속에서는 토기 조각 몇 점만 나왔습니다. 이홍종은 “도시의 핵심 경관인 만큼 호수를 깨끗하게 관리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24일 그와 함께 답사한 나성리 발굴 현장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일부로 변한 지 오래였습니다. 상가건물들이 대거 들어선 가운데 도시유적 위로 아파트를 짓고 있었습니다. 지금껏 발굴된 백제 유일의 지방도시 유적은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 도로, 빙고(氷庫) 등 도시 기반시설 즐비

나성리 유적은 백제의 지방 거점도시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나성리 유적이 흥미를 끄는 건 넓은 부지에 도로망을 먼저 설치한 뒤 건물을 지은 계획도시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도로 유구 안에서 건물터가 깔려 있거나 중복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나성리에서는 너비 2.5m(측구 제외)의 도로뿐만 아니라 귀족 저택, 토성, 고분, 중앙호수, 창고, 가마터, 빙고, 선착장 등 각종 도시 기반시설이 한꺼번에 발견됐습니다.



고지형 분석 결과 나성리 도시유적 내 토성을 둘러싼 옛 물길과 금강, 제천이 일종의 해자로 활용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홍종 교수 제공
○ 첨단 ‘고지형 분석’으로 도시유적 찾아내

 사실 나성리 도시유적의 존재는 발굴 5년 전인 2005년 9월 고지형 분석에서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고지형 분석이란 항공사진과 고지도 등을 통해 유적 조성 당시 옛 지형을 추정해 지하에 묻힌 유적 양상을 파악하는 기법입니다. 연사된 항공사진들의 낱장을 비교하면 겹친 부분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를 3차원(3D)으로 재연하면 세부 지형의 높낮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홍종은 고지형 분석을 통해 나성리뿐만 아니라 공주, 논산, 청주에도 백제 도시유적이 묻혀 있을 걸로 예상했습니다.


재밌는 건 고지형 분석을 통해 규명한 옛 물길을 따라 지진이나 싱크홀이 빈발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물길은 암반층이 상대적으로 얇아 지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본 고베 지진 당시 사망자의 97%가 구하도와 습지에 몰려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학계는 5세기에 건립된 나성리 도시유적이 약 100년가량 존속한 뒤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6세기 중반 이후 유물이나 유적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 쇠락의 원인으로는 고구려 남진과 자연재해 등이 거론됩니다. 이홍종은 “인근 곡창지대인 대평리 유적에서 강물이 범람한 흔적이 발견됐다”며 “홍수로 도시의 식량 기반이 사라진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세종=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