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다던 다문화 아이들, 노래로 하나 되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1-23 1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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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 합창단인 ‘레인보우 합창단’의 장미아 단장(가운데)이 연습 중 아이들과 함께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장 단장의 꿈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세계에서 활약하는 인재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피부색 다른 13개국 40명 ‘레인보우 합창단’ 이끄는 장미아 단장  
 알록달록한 각국의 전통 의상을 입은 다국적 어린이 합창단 23명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객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가수 스티비 원더와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 유명 인사들이 박수로 이들을 맞았습니다. 아이들이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하자 스티비 원더가 고개를 흔들며 공연을 즐겼다. 아이들 공연이 끝나자 관람객들은 환호성과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올 9월 세계평화의 날을 맞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열렸던 ‘레인보우 합창단’의 축하 무대였습니다. 레인보우는 2009년 7월 국내 최초로 다문화 가정 아이들로 구성된 합창단입니다.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내려온 뒤 파란 눈의 러시아 아이가 단장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배고픈데 김치찌개 먹으러 가면 안 돼요?”

 최근 서울 중구 중림로 한국다문화센터 합창 연습실에서 레인보우 합창단을 이끄는 장미아 단장(47)을 만났습니다. 연습실에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연습을 마친 뒤 이야기를 나누며 놀고 있었습니다.

 “합창단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다 외국인 같잖아요. 그런데 입맛이나 행동을 보면 영락없는 한국 아이들이에요. 뉴욕 공연 가서도 삼겹살 같은 한국 음식을 계속 찾아서 애를 먹었죠.”

 무대 사정상 유엔 공연엔 9개국 아이들만 참여했지만 이 합창단에는 일본, 중국, 필리핀, 러시아, 몽골 등 13개국 40여 명의 아이들이 활약하고 있죠. 9∼16세의 어린이들이 오디션을 거쳐 합창단에 참여합니다. 이 합창단은 언어와 외모의 장벽 때문에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의 다문화 가정 어린이를 위해 한국다문화센터가 만들었습니다.

 “센터에서 다문화 자녀들의 학교생활 적응 정도를 알아보니, 많은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했어요. 공부가 문제가 아니구나 싶었죠. 자존감을 세워 주는 게 급선무다, 그러려면 뭔가를 이뤄 나가는 경험을 유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 단장은 기업과 대학에서 ‘이미지 메이킹’ 강의를 하던 전문 강사였습니다. 한 대학에서 다문화 가정 학생을 위한 강의를 하던 그를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가 보고 단장 자리를 맡겼습니다. 김 대표는 “장 단장은 무대 경험이 많아 아이들이 공연장에서 어떻게 하면 각광을 받을 수 있을지 알고 있었다”라며 “합창단장이 참 힘든 일인데 항상 웃는 얼굴로 일하는 걸 보고 단장 자리를 제안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출범한 지 7년 된 신생 합창단이지만 연간 20∼30회의 공연에 초대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주한 외교단 초청 공연, 주요 20개국(G20) 특별 만찬 공연 등 굵직한 행사에도 참여했습니다. 가장 큰 무대는 역시 유엔본부였습니다. 레인보우 합창단은 유엔본부 평화의 날 축하 공연에 서고 싶다고 3년간 계속 제안한 끝에 무대에 오르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올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공연 영상이 담긴 유튜브 자료를 보냈더니 하루 만에 ‘오케이(OK)’ 사인이 왔어요. 여러 나라 어린이가 한목소리를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세계 평화를 바라는 행사 취지에 딱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대부분의 다문화 가정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자녀의 예술 교육에 눈을 돌리기 힘듭니다. 자신감도 떨어져 있어요. 그런데 이 합창단 출신 중에는 뒤늦게 예술적 재능을 깨닫고 예술고에 진학하거나 학교를 대표해 학생회장을 맡은 아이들도 있습니다.

 “합창단에 처음 들어온 아이들을 만나면 한국에서 사는 게 힘들다며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요. 노래를 부르며 조금씩 눈빛이 변해 가죠. 합창단을 그만두고도 자원봉사자로 다시 돌아오는 고등학생, 대학생들도 있어요.”

 장 단장은 강사로 일하며 쌓은 전문성과 경험을 이 합창단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쏟아붓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피부색과 국적, 언어가 다른 아이들이 한국을 세계와 이어 줄 가교 역할을 할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도록 돕겠다는 각오입니다.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너는 나중에 백조가 될 거야’라고 말해 줘요. 지금은 한국말이 서툴고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힘들어하지만 나중엔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거든요. 무대에서 저보다는 아이들이 빛을 받을 수 있도록 일하고 싶습니다.”

송충현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