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마케팅’의 끝 “사진 붙여 놓을 가치가 없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1-21 14: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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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방문을 홍보했던 음식점들은 홍보물을 떼어내며 ‘대통령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동아일보DB 
 “광화문, 서대문, 시청 일대 식당이 식재료가 떨어져 죄다 일찍 문을 닫았다. 시위로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이게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창조경제였다.”

 주최 측 추산 100만여 명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였던 12일 촛불집회에 다녀온 누리꾼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런 글이 떠돌았습니다. 이전에 없었던 대규모 촛불집회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비 진작을 이끌어 냈다는 비아냥거림이었습니다. 누리꾼들이 말한 ‘박근혜식 창조경제’는 실제로 꽤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우선 인근에 대중이 얼마나 운집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편의점의 12일 매출은 일주일 전 토요일에 비해 최대 3배로 뛰었습니다. 한 편의점 체인의 광화문 인근 20개 점포에서는 평소보다 냉장 식품은 290%, 음료는 209% 더 팔렸습니다. 품귀 현상을 빚은 양초는 1개에 200원짜리가 시위 현장에서 3000원에 팔렸습니다. 인근 카페와 식당은 오후 7시에 문을 닫았습니다. 낮부터 시민들이 몰리면서 재료가 다 떨어져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반대로 대통령 악재 때문에 울상을 짓는 곳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대통령 마케팅’으로 재미를 본 업체들 얘기입니다. 소탈한 이미지를 강조해 온 박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 국내 중소기업 제품을 자주 노출했습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는 중소기업 살리기에 앞장서는 대통령이 선택한 브랜드로 인식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최 씨와의 연관성을 두고 의심부터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대구 소재 안경테 제조업체 ‘시선(SEESUN)’이 그렇습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이 업체 선글라스를 쓰고 나와 관심을 모았습니다. 시선 제품은 ‘박근혜 선글라스’로 불리며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호재가 악재로 바뀌었습니다. 시선 관계자는 “우리는 원래 수출 기업”이라며 “대통령 선글라스로 홍보한 적 없다”고 선긋기에 바빴습니다.

 박 대통령의 가방과 디자인이 유사해 원조 논란이 일기도 했던 국내 가방 브랜드 ‘호미가’는 덩달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호미가는 최 씨 측근인 전직 펜싱선수 고영태 씨가 운영한 가방 브랜드 ‘빌로밀로’와 디자인이 비슷해 그동안 ‘VIP 가방’이라고 은근슬쩍 홍보해 왔습니다. 호미가는 최근 논란이 일자 홈페이지에서 홍보 문구를 삭제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호미가의 최근 백화점 매출은 마이너스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업체들뿐 아니라 대통령이 다녀간 식당, 과일가게 등 많은 자영업자들도 손님이 떨어질까 우려하며 대통령 지우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식당을 비롯해 박 대통령 방문으로 유명해진 울산 신정시장, 충북 청주시 서문시장, 충남 서산시 철새도래지 전시관 등도 홍보용으로 걸어뒀던 대통령 사진을 치웠습니다.

 한 식당 주인이 식당에 걸어 뒀던 박 대통령의 사진을 떼어 내며 했던 말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사진을) 붙여 놓을 가치가 없다.”

 존경받는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든 국내 정치 현실에서 존경받는 대통령이 나오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국민에게 “가치 없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잘못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요. 어느 때보다 짧았던 ‘대통령 마케팅’의 유효기간을 체감하며 씁쓸함을 느낄 뿐입니다. 
 
최고야 산업부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