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아파트는 왜 ‘군사기지’를 닮았을까?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1-21 14: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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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GettyImagesBank
《 한번은 동료 도시계획가에게 서울의 5천분의 1 축척 지번 약도를 보여 주었더니 “한강변의 군사기지 규모는 정말 대단하군”이라 했다. 바로 반포의 아파트단지였다.―아파트공화국(발레리줄레조·후마니타스·2007) 》
 
 올여름 프랑스 북부 도시 루앙에서 ‘빛의 대성당’이라는 영상제가 열렸습니다.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 도시를 상징하는 유적인 대성당 벽면에 영상물들을 비춰 보여 주는 축제였습니다. 1000년 전 이곳에 정착한 바이킹의 위용을 담은 비디오아트가 웅장한 음악과 함께 성당 앞 벽면에 펼쳐졌습니다.

 영상물이 시작되자 시끌벅적하던 광장이 순식간에 숙연해졌습니다. 몇몇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화면엔 고대 켈트와 바이킹, 18세기 상인 복장을 한 주민들이 하나씩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현대 프랑스인 가족 옆에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기도 했습니다.

 이방인인 나로서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인종도 달랐던 옛 주민들에게 어떤 동질감을, 어떤 방식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인지 묻자 한 젊은 부부는 짧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든 도시에서 살아요.”

 그랬다. 루앙의 중심가는 14∼19세기의 외형을 대부분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100년 전에 지어진 빌라에 사는 사람도 흔했습니다. 그렇다고 옛 모습을 고수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주민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도시 경관을 변주(變奏)했습니다. 테라스를 꾸미고 지붕 색을 바꾸면서 도시 모습을 조금씩 바꿨습니다. 모든 시민이 도시 풍경을 바꾸는 데 참여하는 셈이었습니다.

  ‘아파트 공화국’ 서울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 아파트들은 전쟁의 폐허 위에 들어섰습니다. 그 외형은 정부가 짜 놓은 표준 모델을 따랐고, 입주민이 쉽게 바꿀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심지어 서울의 아파트를 신속한 사업화를 위해 고안된 기계이자 병영이라고 불렀을 정도입니다. 지금도 서울에 수많은 아파트단지가 건설되고 있다. 주택이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담는 그릇이 될 수 있음을 한국의 땅 주인과 도시계획가들이 기억해 줬으면 합니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