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스타 받은 중식당, 연남동 ‘진진’황진선 셰프 인터뷰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1-21 10: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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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진선 셰프가 대게살볶음을 웍에서 접시에 옮겨 담고 있다. ■2 곁에 서면 여전히 어렵고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지는‘사부님’ 왕육성 셰프(오른쪽)와 함께. ■3 황진선 셰프가 꼽은‘진진’의 3대 메뉴. 담백한 풍미의 대게살볶음, 이곳 손님이면 무조건 시킨다는 필수아이템 멘보샤, 산뜻한 매운맛과 고기를 다져넣은 식감이 인상적인 마파두부.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미슐랭 1스타 중식당 ‘진진’ 황진선 셰프

‌무릎 다쳐 운동 꿈 접고 무작정 요리 도전
허드렛일 하면서 2년 만에 겨우 웍 잡아
음식에 엄격한 사부님…난 아직 멀었죠
서울 망원동의‘진진’(津津)은 장안에서 가장 ‘핫’한 중식당이다.

미식가들 사이에서 깊은 내공의 맛집으로 사랑받던 이곳은 ‘수요미식회’등의 미식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7일 발표한 ‘미슐랭 가이드 서울’에서는 전체 24개 스타 레스토랑 중 ‘유이’(有二)한 중식당으로 1스타를 받았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다른 중식당이 포시즌스호텔의 ‘유 유안’이니, 서울의 일반 중식당으로는 유일한 수상이다.

‘진진’은 사보이호텔 ‘호화대반점’, 코리아나호텔‘대상해’를 거친 중식계 고수 왕육성 셰프가 세운 곳이다. 이곳에는 왕 셰프와 ‘대상해’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애제자 황진선(30) 셰프가 있다.

막 이립(而立)에 들어선 나이지만, 진진의 세 매장(본관, 신관, 진진가연)을 총괄할 정도로 역량을 인정받는 중식계의 ‘젊은 피’다.

‘셰프 전성시대’라 말할 정도로 셰프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높아진 요즘이다. 하지만 성공과 명성의 달달한 스토리는 넘쳐나도, 묵묵히 주방에서 땀 흘리며 사는 현실적인 삶의 이야기는 잘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매장의 브레이크 타임(휴식시간)에 맞춰 황진선 셰프를 찾아갔다. 하루하루 뜨거운 불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현실과 함께 그 과정에서 하나씩 이루어가는 현재진행형의 꿈에 대해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외유학? 전문학과? 꿈만 갖고 입문해 외길 10년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황진선 셰프는“아이구, 저보다 사부님과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라며 한사코 사양을 했다. 여러 번의 설득 끝에 겨우 마주했지만 여전히 쑥스러워했다. 지금은 중식계의 주목받는 ‘영셰프’지만 그의 이력은 화려한 해외경력이나 관련 전문학과와 거리가 멀다.

태권도 선수로 대학도 경호관련 학과를 나왔다. “무릎십자인대 부상으로 새로운 길을 고민하다 어릴 적 꿈에 도전해 보자고 무작정 요리업종에 이력서를 냈다.” 아무런 경력도, 교육도 없이 꿈만 갖고 이력서를 돌리던 중 연락이 온 것이 왕육성 셰프가 대표로 있던 코리아나 호텔 ‘대상해’. 박스 나르고, 접시 깔고, 각종 물건 정리하는 월급 80만원의 인턴사원으로 주방 인생과 왕육성 셰프의 인연이 함께 시작됐다.

“중식도를 대상해에 입사해서야 처음 만졌을 정도니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다. 실제로 관련학과를 나왔거나 경력 있는 동기들에 비해 일을 너무 못해 잘릴 뻔도 했다. 허드렛일을 하면서 짬짬이 어깨 너머 눈동냥으로 일을 배웠지만, 그것으론 부족해 밤에 술집 주방에서 일하면서 칼질 등 조리 훈련을 했다. 그렇게 2년을 버티니 겨우 웍(중식 프라이팬)을 잡을 기회가 왔고, 그 이후 지금까지 왔다.”




주방은 학교가 아닌 일터, 내 힘으로 살아남는다
황 셰프의 과거 이야기를 듣다가 “경력 없는 사람 뽑았으면 일은 제대로 가르쳐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주방은 학교가 아닌 일터인데 당연한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월급 받는 만큼 해야 할 일이 있다. 누가 대신 해주지 않는다. 욕을 먹건, 잔소리를 듣건 내가 잘하면 된다. 인턴시절 잘릴 위기를 겨우 넘긴 뒤 하루 일당이 4만원이었다. 매일 출근했다가 내 일이 없어 기다리다가 그냥 돌아오면 그날은 한 푼도 못 받았다.”

황 셰프는 요즘 중식을 배우겠다고 진진을 찾아오는 젊은이 중에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이나 현장에서 어떻게든 배우겠다는 절실함 보다는 근무시간과 조건, 휴일, 연차부터 먼저 따지는 친구들이 꽤 있다”고 꼬집었다.


셰프는 육체노동…몸고생 각오 안하면 못 버틴다
‘천부적인 미각’또는 ‘조리의 귀재’라고 종종 셰프의 천재성을 칭찬하는 말이 있다. 요리를 창의적인 직업으로 높게 평가하는 요즘 경향과 미슐랭 가이드, 월드 레스토랑 베스트 50 등의 해외 유명평가제가 알려지면서 생겨난 수식어다. 요리에도 천부적인 자질이 있을까.

황진선 셰프는“천부적인 감각도 결국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이 인정해야 통하는 것이다. 누가 먹더라도 인정하는 요리가 되려면 또 그만한 세월, 경륜이 필요하다. 요리는 반복과 숙달의 직업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셰프를 육체노동이라고 말한다. “아침 9시 반쯤 출근해 각자 업무준비하고, 그날 쓸 재료 다듬고 아침 먹으면 바로 점심장사 시작된다. 오후 2시쯤 끝나면 다시 재료 준비해야하고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면 밤장사가 시작된다. 장사 끝나면 홀부터 주방 환풍기까지 청소를 늦어도 10시 전에 마무리해야 한다. 매일 긴장하고 욕먹고 정신없이 분주한 일상이다.”


아직도 어렵지만 늘 고마운 ‘사부님’ 왕육성 셰프
진진’의 오너 왕육성 셰프를 그는 지금도 “사부님”이라고 깍듯이 부른다. 2013년 말 왕 셰프가‘대상해’를 그만두고 나와 새로운 가게를 차릴 때 그는 주저함 없이 같이 나와 창업에 참여했다.

“대상해 시절 초기에는 너무 어려운 존재라서 제대로 보기도 어려운 분이었다. 가끔 주방에 들어와서 호통을 쳐서‘저 양반은 누구야’라고 의아해 했다. 일할 때는 너무 엄격하고 음식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지금도 어렵다. 무지 꼼꼼하고 조금만 음식 밸런스가 어긋나거나 재료가 빠지면 난리가 난다.”

이제는 미슐랭 스타 셰프인 사부님의 전체 업장을 관리하는 든든한 조력자인 그에게 미래의 꿈을 물었다. “아직 난 멀었다. 진진이 좀 더 잘 자리 잡는 동안 여건과 기회가 되면 무엇이든 배우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사부님이 꿈꾸는 후배 요리사를 양성하는 시스템을 돕고 싶다.”

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