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아빠’에 학대당한 예비신부 “나도 엄마 될 수 있을까”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1-18 15: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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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결혼을 앞둔 박사랑 씨(25·여)는 이달 초부터 집 근처의 한 심리상담센터에서 연극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20년 가까이 아버지로부터 모진 학대를 받은 박 씨는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경험한 적이 없어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용기를 냈다”고 말했습니다.

박 씨에게 아버지는 잠든 자신의 방을 찾아와 수시로 주먹질을 했던 ‘괴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남편이 아이의 방에서 딸을 학대하는 동안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집 안 청소를 했습니다. 학대가 끝나면 조용히 아이의 방을 찾아와 “아빠가 바깥 일로 속상한 게 많아서 그래. 아빠도 친할아버지한테 많이 맞았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걸어 잠근 방문 틈새로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겁에 질렸습니다. 신에게 자신을 죽게 해 달라는 기도를 자주 했습니다.



아버지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사업가로 지역 활동과 봉사에 열심이었지만 집에서는 ‘감기에 걸려 병원비가 든다’는 이유로, ‘집이 엉망이다’라는 이유로 밤마다 무차별적으로 폭행했습니다. 누구도 그를 가정에서 학대를 일삼는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학대는 그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박 씨는 학교에서, 길거리에서, 직장에서 수시로 마주치는 사람들이 집에서 학대를 일삼는 ‘아버지’는 아닐까 의심하고 멀리했습니다. 대인 관계가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병원 일을 하며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폭력이 죽기보다 싫지만 내 안에 아버지와 닮은 ‘공격성’이 있을지 모른다”고 그녀는 고백했습니다. 심리상담이 시작된 이유입니다. 심리상담사와 마주 앉은 박 씨의 첫마디는 “20년 가까이 학대를 받은 제가 아이를 낳아 길러도 될까요”였습니다. 훈육과 학대를 구별하지 못한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자신이 부모가 됐을 때 그들과 다를 것이란 확신이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박 씨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윤재진 마인드힐링연구소 대표는 “따뜻한 양육을 받지 못한 사실을 인정하고 불안 분노 같은 정서적 문제를 해결해야 학대 대물림이 없어진다”고 말했습니다. 19일은 학대 피해 아동들과 박 씨처럼 용기를 낸 어른들을 위로하는 세계 아동학대 예방의 날입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