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이 울면…” 최순실 사태 비판하는 데 ‘여성비하’ 필요?

이예리 기자
이예리 기자2016-11-18 14: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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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 국민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고 있는 국정농단 사태를 비판한답시고 ‘여성 비하’ 발언을 쏟아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과연 이번 사태가 대통령이 여성이기 때문에, 최순실이 여성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까요?

‌지난 5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2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 사회자와 일부 발언자들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발언을 하고, 최순실을 “아녀자” “강남 아줌마” 등으로 지칭했습니다. “박근혜를 병원으로” “병XX”등 장애인을 조롱하는 구호도 등장했습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17일 “대통령과 최순실의 성별을 소재 삼아 비하하거나 여성을 일반화하는 비하 발언은 옳지 않다”고 하며 잘못된 발언의 실제 사례를 모아 지적했습니다.





사진=이재명 성남시장 트위터

1. 이재명 성남시장 (10월 29일 청계광장 촛불집회에서 / 이후 ‘신중하지 못한 표현이었다’고 사과)
“박근혜는 국민이 맡긴 권력을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던져주고 말았습니다.” (미디어오늘 11월 1일 보도)

2.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11월 9일 KBS라디오 공감토론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대단히 미안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앞으로 100년 내로는 여성대통령 꿈도 꾸지 마라’고 말했다.” (여성신문 11월 16일 보도)

3.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10월 25일)
“헌법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강남에 사는 웬 아주머니가 대통령의 연설을 저렇게 뜯어고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나” (경남도민일보 11월 9일 보도)




사진=여성신문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이진옥 대표는 16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성 비하는 여성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기득권 문화의 특징이자 현상” 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인의 기본값’, ‘인간의 기본값’이 남성이라는 것입니다. 가족과 연인을 사랑하는 다정한 남성도 무의식중에 여성 비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심지어 여성 자신조차도 이런 사고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습니다. 정치하는 남성은 정치인으로만 평가되지만 정치하는 여성은 정치인으로서의 평가 외에 여성으로서의 평가도 함께 받습니다.

고아, 장애인 등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의식적 비하 발언도 경계해야 합니다. 지난 10월 31일 호소문을 발표한 알바노조 위원장 박정훈 씨는 “’애미 애비도 없는 X’은 고아에 대한 비하적 표현입니다. ‘2016년 병신년’을 교묘하게 이용한 ‘ㅂㅅㄴ’ 욕설 역시 장애인과 여성을 함께 비하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박근혜와 최순실이 여자라서 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준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비판해야 합니다.” 라고 지적했습니다.

남성 정치인을 비판할 때 “그 남자 때문에 나라 망쳤다”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성이 잘못을 하면 남성 전체가 아니라 그 사람 개인의 문제로 여기면서, 왜 여성이 잘못을 하면 ‘이래서 여자는 안 돼’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해’ 같은 표현이 등장할까요. 박근혜라는 정치인을, 최순실이라는 개인을 ‘계집’ ‘아줌마’ ‘여편네’로 치환하는 순간 문제의 본질은 흐려집니다.

지난 7일 녹색당 여성특별위원회는 “이런 부적절한 표현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 비하가 얼마나 사소한 일로 여겨지는지, 여성을 비하하는 콘텐츠가 가십거리로서 얼마나 잘 팔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비판했습니다. 고정관념과 편견에 지배되지 않고 핵심을 꿰뚫어 비판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