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50억 FA계약…‘백업 선수’의 인생역전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1-16 17:5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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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50억 FA계약’ 프로야구 두산 김재호의 인생역전 
두산에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유격수 김재호가 15일 원 소속팀 두산과 4년간 총액 50억 원에 이르는 대형 계약을 맺었다. 만년 백업 선수이던 김재호는 주전 선수로 발돋움한 지 4년 만에 역대 FA 유격수로는 가장 많은 돈을 받게 됐다. 올 시즌 FA 계약 1호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2012년 겨울 어느 날.

  ‘백업 선수’ 김재호(31·두산)는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2004년 입단해 프로 9년차 선수였지만 그는 여전히 제자리를 못 잡고 있었다. 1군보다는 2군이 익숙했고, 주전보다 후보에 머물 때가 많았다. 그는 공책 한 권을 꺼내 자신의 꿈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주전 유격수, 3할 타율, 골든글러브, 억대 연봉, 국가대표, 올스타전 출전, FA 계약….’

  ‘버킷리스트’를 쓴 뒤 그는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래, 마지막으로 1년만 더 해보자. 올해도 안 되면 깨끗하게 정리하자. 그 대신 후회하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해보자.”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그는 많은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주전 유격수가 됐고, 억대 연봉을 돌파했고, 지난해 프리미어12에서 난생처음 태극마크도 달았다.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도 2개나 끼게 됐다.

 그리고 15일 그는 두산과 4년간 총액 50억 원(계약금 20억 원, 연봉 6억5000만 원, 인센티브 4억 원)에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했다. 올 시즌 FA 계약 1호이자 유격수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계약(종전 2005년 삼성 박진만의 4년 39억 원)이다. 4년 만에 인생 역전에 성공한 그는 “입단하고 2군과 백업 생활을 오래하면서 이런 날이 오리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평생 한 번 오기 힘든 행운을 잡은 나 스스로가 자랑스럽다”라고 했다.

○ 꿈은 이뤄진다

 9년 동안 후보 선수였던 김재호가 주전이 된 것은 4년 전이다. ‘백업’ 김재호와 ‘주전’ 김재호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는 “마음가짐과 노력의 차이”라고 했다.

 2004년 1차 지명으로 입단했을 때만 해도 그는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쟁쟁한 선배들의 벽에 가려 벤치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신감을 잃어 갔다. 10년 가까이 벤치 멤버로 버티다 보니 야구장에 가는 게 싫을 때도 있었다. 김재호는 “돌이켜보니 결국은 마음가짐에 모든 게 달려 있더라.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졌다. 행동이 달라지니 인생도 바뀌었다”라고 했다. 그는 “이전에도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남이 시키는 것만 열심히 했다. 2012년 겨울 새롭게 꿈을 가진 뒤엔 스스로 알아서 노력했다.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채우고자 했다. 2013년 초반 부상으로 경기에 못 나가다가 6월 1군에 올라갔는데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만큼 준비가 잘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2013년은 김재호가 오랜 무명 생활에서 벗어나 주전으로 발돋움한 해다. 입단 후 가장 많은 91경기를 뛰면서 그는 처음으로 야구가 재미있어졌다고 했다. 한번 알을 깨고 나오자 거칠 게 없었다. 지난해 처음으로 3할 타율(0.307)을 넘어섰고, 올해는 주장을 맡으면서도 타율 0.310에 7홈런, 78타점을 기록했다. 원래부터 수준급이던 수비는 더욱 정교해져 올해 실책은 10개밖에 되지 않았다.


○ 영원한 두산맨

 공수를 갖춘 유격수인 그를 두산은 “대체 불가 선수”라고 평가했다. 두산 외에도 그에게 관심을 나타낸 구단이 몇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팀과는 아예 협상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두산 유니폼밖에 없었다.

 김재호는 “어릴 때는 두산이라는 팀이 밉기도 했다. 선수 층이 두껍지 않은 다른 팀에 갔었다면 좀 더 일찍 주전이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운 정이 오래간다는 말도 있지 않나. 언젠가부터 두산에서 선수 인생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두산에 남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힌 것은 올해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 지은 9월 22일이었다. 그는 “그날 경기 중 수비를 하러 그라운드로 뛰어가는데 ‘나는 누가 뭐래도 여기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라고 했다. 그날 그는 팬들 앞에서 “두산이 제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팀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재호는 “두산의 팀 컬러라는 게 있다. 선수들은 이기든 지든 몸을 날리며 최선을 다한다. 선배들이 그렇게 하니 후배들도 자연스럽게 배운다. 팬들께서 그런 모습을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두산은 ‘나’가 아니라 ‘팀’을 가장 많이 보여 주는 팀이다. 그런 팀의 일원이라는 게 자랑스럽다”라고 했다.

 김재호는 매년 새롭게 버킷리스트를 쓴다고 했다. 새로운 리스트에 어떤 게 추가될지를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세 번 더 우승해 한쪽 손의 모든 손가락에 우승 반지를 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