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 한국에 꼭… ” 미국 참전용사들 소원 이뤄주는 교포 천사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1-14 14: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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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 이영수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6·25전쟁 이후 6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미국인 참전용사 3명. 국가보훈처 초청 형식으로 8일부터 5박 6일간 방한한 이들은 이 씨가 백방으로 뛰어 모은 후원금으로 항공 료 일부를 지원받아 평생의 소원이던 한국을 방문했고 13일 귀국길에 올랐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이 일어났습니다. 서울이 뉴욕과 비슷해졌네요.”(조지 데이비슨 씨·85)
“60여 년 전 한국엔 아무것도 없었죠. 그런데 지금 이 많은 차들 좀 보세요. 내가 이곳에 돌아왔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존 바우어 씨·92)

 9일 서울 그랜드앰배서더 호텔. 백발의 미국인 남성 3명이 무리 지어 호텔 곳곳과 자동차가 가득한 바깥 풍경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봤습니다. 이들은 꽃다운 청춘이던 20대에 6·25전쟁이 발발한 한국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참전용사들. 전쟁이 끝난 뒤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이들은 60여 년 만에 폐허에서 선진국으로 재탄생한 한국을 보며 감탄사를 쏟아냈습니다.

 데이비슨 씨와 바우어 씨, 랠프 워크먼 씨(86) 등 노병 3명을 노스캐롤라이나에서부터 인솔해 온 이는 재미교포 이영수 씨(69)입니다. 이 씨는 “늘 ‘죽기 전에 한국에 가 보고 싶다’고 말하던 분이 소원대로 한국 땅을 밟을 수 있게 돼 내가 더 행복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노병들은 이 씨에게 “꿈에도 그리던 땅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도와줘 감사하다”라는 내용의 감사패를 전했습니다.

 이들이 60여 년 만의 첫 해외여행으로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이 씨의 덕분입니다. 국가보훈처는 매년 3, 4차례 6·25전쟁 유엔군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발전된 한국의 모습을 보여 주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예산 탓에 숙식비는 보훈처가 모두 지원하지만 항공료의 절반은 참전용사들이 내야 합니다. 80, 90대 고령으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참전용사 상당수는 항공료가 없어 마지막 소원인 한국행을 포기하고 눈을 감습니다.

 1987년 이민을 간 이 씨는 이런 참전용사들의 소원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다리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10여 년 전 미국 지역 신문에 게재된 노스캐롤라이나 지역 미국인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시가행진 모습을 본 게 치과기공사로 일하던 이 씨가 나선 계기였습니다. 그는 “한국을 기억하겠다며 참전용사들끼리 매년 시가행진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들에게 진 빚을 갚고 싶었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 매년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다가 이들의 소원이 “한국에 한 번 가 보고 눈을 감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2011년부터 2년여 동안 한국의 국회, 기업, 언론사 등에 항공료를 후원해 달라며 편지 수십 통을 무작정 썼습니다. 2014년경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동아일보에서 무료로 후원 요청 광고를 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미군 한국전참전용사지원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았던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에게서 “재단을 통해 참전용사 10명의 방한을 돕겠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동아일보에 나온 광고를 본 익명의 한국인 독지가가 1만 달러를 후원하면서 참전용사 4명과 그들의 가족 2명이 지난해 한국에 올 수 있었습니다. 올해 3명이 방한할 수 있었던 것도 후원금 덕분입니다. 그는 “나도 20대 초반 13개월간 베트남전에 참전해 베트남에 가 보고 싶지만 기회가 없어 한 번도 가 보지 못해 안타까웠다. 90세 안팎 고령인 참전용사들을 위해 하루빨리 후원금을 더 모아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씨가 거주하는 서부 노스캐롤라이나 지역 참전용사 상당수는 고령으로 별세하고 이제 50여 명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의 목표는 이들의 마지막 소원을 한 명이라도 더 들어주는 것입니다. 내년 봄엔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후원금 모금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이들의 젊은 시절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경제 대국 대한민국은 없었을 겁니다. 힘닿는 데까지 모금 활동을 해 이들의 젊음에 진 빚을 꼭 갚을 겁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