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분노… “비폭력” 외치며 충돌 막고 광장의 축제로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1-14 10: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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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 교민까지 동참… 집회뒤엔 말끔히 청소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를 든 어린이 등 어린아이들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시위에 동참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①. 12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에펠탑 건너편 트로카데로 인권광장에서 유학생 등 한국 교민 600여 명이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②. 시민들이 12일 늦은 시간에 해산하면서 쓰레기봉투를 들고 거리에 쌓인 쓰레기를 주워 담고 있다 ③. 뉴시스·파리=뉴시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사상 최대 촛불집회]평화시위 이정표… 성숙한 시민의식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성난 민심이 12일 서울 도심을 평화의 촛불 행진으로 뒤덮었다. 주최 측은 행진이 한창 진행 중이던 오후 7시를 지나면서 인파가 100만 명(경찰 추산 최대 인원 26만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서울 광화문광장은 물론이고 종각, 서대문, 숭례문 일대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진 집회는 큰 충돌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 경찰-시민 한입 모아 “비폭력” 연호

이날 사회 각계 단체가 오전 11시부터 사전집회를 열면서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일대 등에는 시민 수만 명이 이미 자리 잡기 시작했다. 본집회가 예정된 오후 4시가 지나자 인파가 주최 측 추산 25만 명(경찰 추산 14만 명)까지 불어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퇴진하라”는 시민들의 외침은 더욱 거세졌다.

오후 5시가 넘어 행진이 시작되자 촛불을 켜든 시민들의 물결은 절정을 이뤘다. 시민들은 서울광장에서 출발해 각각 세종로, 서대문 교차로, 정동길, 안국역, 을지로입구 등을 거치는 5개 경로로 행진했다. 다른 집회 현장에서 보기 힘들었던 교복 차림을 한 중고교생부터 손자들과 함께 나온 노년층까지 “국민이 주인이다” “박 대통령은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행진 종착점인 서울 종로구 내자동 교차로에서는 청와대로 향하려는 시위대와 이를 막으려는 경찰 간 대치가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지면서 내내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폭력시위로 번질 위기를 막아낸 것도 시민들이었다. 일부 흥분한 시민들이 경찰을 밀치면 이내 다른 시민들이 “비폭력”을 연호하거나 손을 맞잡고 ‘인간 띠’를 만들어 충돌을 막았다. 오후 8시쯤 내자동 교차로에 합류한 대학생들이 흥분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방패 등을 빼앗는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폭력시위가 되어선 안 된다”며 만류했다.

“시민들의 집회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밝힌 경찰이 인내와 비폭력을 강조하며 충돌을 최대한 피하려 한 것도 평화적인 시위에 한몫했다. 오후 10시경 내자동 교차로 인근 차벽에 오른 한 남성이 저지하려는 경찰 4명을 수차례 밀쳐 경찰들이 차에서 떨어질 뻔한 상황이 연출됐지만 경찰은 진압만 하고 연행하지 않았다. 오후 11시경 시민 20여 명이 차벽 위로 올라갔을 때도 경찰은 침착했다. 경찰은 차벽에 올라가려는 시민들의 손을 잡아주는 등 도와준 후 내려가도록 설득했다. 이를 지켜본 시민들은 “비폭력” “내려와” “경찰도 시민이다” 등 구호를 외쳤다. 시민들은 경찰들에게 생수와 초콜릿 등을 건네며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13일 새벽까지 시위대 1000여 명이 내자동 교차로 인근 도로를 점거하며 시위를 이어가자 경찰은 수차례 해산 명령을 한 후 오전 2시 반경 해산 작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해산 명령에 불응하거나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시민 23명이 연행됐다. 경찰 8명이 탈진 증세를 보이거나 다치는 등 경찰과 시민을 통틀어 64명이 경상을 입었다.


○ 축제로 진화한 촛불집회

이날 집회 현장에는 과거 반정부 집회에서 자주 보였던 폭력은 없었다. 그 대신 문화 공연 등이 펼쳐져 시민들은 축제를 즐기듯 시위에 참여했다. 광화문광장 무대에서 공연한 밴드 ‘크라잉넛’은 대표곡 ‘말 달리자’를 부르기에 앞서 “말은 독일로 달려가는 게 아니다. 이화여대로 달려가는 게 아니다. 달려야 할 곳은 청와대!”라고 외쳐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시민의식은 해산 과정에서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시민들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쓰레기봉투를 들고 손이나 집게를 이용해 더러워진 거리를 직접 치웠다. 플라스틱 자 등을 이용해 도로 위에 떨어진 촛농까지 긁어내는 시민들도 있었다. 대학생 이준범 씨(26)는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기다 친구들에게 집회 상황을 전해 듣고 쓰레기봉투를 사서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차길호 kilo@donga.com 기자·김단비·김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