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 몰고 세계여행… “느림 속에서 삶을 배우죠”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1-11 11: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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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 여행가’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이 모형 트랙터를 지구본에 올려놓고 웃고 있다. 트랙터로 터키, 중국, 미얀마를 여행한 강 씨는 내년에 트랙터를 몰고 페루와 칠레를 찾을 예정이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트랙터는 땅을 갈거나 파종할 때 쓰이는 농업용 기계입니다. 논과 밭에서 이용하니 빨리 달릴 일이 없지만 시속 30km까지 속력을 낼 수 있습니다. 짧은 거리를 오가기엔 나쁘지 않고 장거리 운행을 하기엔 턱없이 느립니다. 이 트랙터에 앉아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고 이젠 세계 곳곳에 트랙터 바퀴자국을 남기는 이가 있습니다. 국내 최초의 트랙터 여행가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33)입니다.

 7일 서울 용산구 만리시장의 ‘여행대학’에서 그를 만났다. 2014년 강 씨가 세운 여행대학은 여행가와 여행을 꿈꾸는 이를 연결해주는 교육 플랫폼입니다.

 “여행대학은 여행 전문가들이 예비 여행가를 위해 강연을 하는 장소예요. 12월부터 겨울학기가 시작돼 지금 엄청 바빠요. 어제도 구석에 침낭 펴고 잤습니다.”

 얼마나 여행을 좋아하기에 여행대학을 세우고 직접 총장이 됐을까요. 그는 19세에 여행가로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의 고향은 경남 하동군. 시골에서 쌀농사를 하는 부모님과 살던 그는 세상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TV에서 본 ‘삼척 동굴 엑스포’ 소식은 그의 호기심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때까지 강원도를 한 번도 안 가봤거든요. 근데 동굴이 있다는 거예요. 무조건 가야겠다 싶어 자전거를 끌고 아버지한테 갔어요. 아버지는 ‘고등교육 마친 사람은 살든 죽든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며 승낙해주셨죠. 그길로 자전거 몰고 삼척까지 갔죠.”

 여행에 눈을 뜬 그는 방학이 되면 제주도, 동남아시아 가리지 않고 무작정 떠났습니다. 이왕 여행하는 거 ‘농부의 아들’인 자신의 정체성을 살리는 게 어떨까 싶었습니다. 트랙터를 운송수단으로 점찍은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엔 아버지의 트랙터를 빌리려 했습니다. 아버지는 “네가 이거 가져가면 농사는 뭘로 짓느냐”며 거절했습니다. 그는 왜 트랙터를 타고 여행하려는지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국내 트랙터 업체를 돌았습니다.

 “트랙터 협찬이 안 돼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까지 찾아갔어요. 물론 큰 도움은 안 됐죠. 그러다 군대를 갔고 전역하자마자 다시 트랙터 업체를 찾아 다녔어요. 2008년 9월 국내 한 업체가 겨우 트랙터와 기름값을 지원했고 6개월간 전국 무전여행을 떠났습니다.”

 자신감이 붙자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2년간 트랙터 업체에 구애해 트랙터를 빌렸습니다. 2012년엔 터키를, 2013년엔 중국을 트랙터로 누볐습니다. 1만8300km를 달리는 대장정이었습니다. 하루에 100km를 달려 자리를 잡은 뒤 지역 주민과 하루를 보냈습니다. 지난해엔 트랙터를 몰고 두 달간 미얀마를 달렸습니다.

 강 씨는 트랙터 여행으로 쌓은 노하우를 예비 여행가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여행대학이 만들어졌습니다. 여행대학에선 강 씨 외에 약 50명의 여행가가 여행 멘토로 활동 중입니다. 바쁜 일상이지만 그의 트랙터는 여전히 시동이 켜져 있다. 그는 내년에 페루와 칠레에서 4000km를 달리는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행 다니면 고난이 재미가 되고 재미가 고난이 되죠. 힘들다 뿌듯하고 재밌다 힘들어요. 삶이랑 똑같죠. 여행은 일희일비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에요. 내년에도 더 많이 배워 오겠습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