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의 반은 여자로, 반은 남자로 산 인도 청년

이예리 기자
이예리 기자2016-11-11 10:5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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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Harikatha Prasanga 트레일러/Youtube
인도의 전통 춤공연 ‘약샤가나’에서 여자 역할만 맡아 연기해 온 남자 배우가 있습니다. 이 배우는 고운 얼굴과 가녀린 목소리로 아름다운 춤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습니다. 무대 위의 그는 여자보다 여성스러운 여자였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집안의 든든한 아들이자 결혼할 때가 된 일등 신랑감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여성과 남성 사이를 오가는 이중생활에 혼란스러워 하던 그는 배역 때문에 유지하던 긴 머리를 보통 남자처럼 짧게 잘라버렸습니다. 공연단 단장은 “해고하겠다”며 화를 냈고, 그는 스스로 극단을 떠났습니다. 이제 정체성 혼란 없이 남자로서만 살면 되겠다 싶었지만 막상 무대를 떠난 그는 평소에도 여자 옷을 입고 곱게 화장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됩니다. 곧 마을에는 이상한 소문이 퍼졌고 그 때문에 남동생의 혼삿길도 막혀 버렸습니다.



남자는 여장을 그만두는 대신 홀로 고향을 떠나 다른 배우와 2인조 극단을 만들어 다시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새로 정착한 마을에서도 ‘늙은 남자와 치마 입은 남자가 같이 산다’며 목숨의 위협까지 받게 됩니다.



사진=Harikatha Prasanga 트레일러/Youtube
이 이야기는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영화 ‘어느 댄서 이야기’의 줄거리이자 실화입니다. 감독인 아난야 까사라발리 씨는 약샤가나 배우들을 취재해서 쓴 단편소재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무대 위의 여장 남자는 현실에 위협적이지 않기 때문에 공격당하지 않지만, 현실의 여장 남자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흔든다는 이유로 공격당합니다. 다양한 성 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옛날처럼 성 역할이 남자와 여자 단 두 개로 나뉘어 있는 상황을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에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이죠. 그런 위선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사진=Harikatha Prasanga 트레일러/Youtube
까사라발리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인도가 좀 더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변화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희망을 밝혔습니다. 그에 의하면 인도에서도 페미니즘 운동이 꾸준히 계속되고 있고, 과거보다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합니다.

30세의 젊은 여성인 까사라발리 감독은 영화제작 도중 주위의 시선 때문에 답답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이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여자니까 아동용 영화를 만들어봐라’, ‘힘든 길 가지 말고 가벼운 소재를 골라서 편하게 가라’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아주 불쾌한 말들이었죠. 난 여자가 맞지만, 여자니까 아동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난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하리’의 실종으로 마무리됩니다.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아있다면 여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남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아무것도 공개되지 않습니다. ‘하리’가 원한 것은 남자 혹은 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든 그것 때문에 공격받지 않는 세상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