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동의보감 초판 '자루당 10만 원'에 넘긴 도둑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1-04 10: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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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최고의 의학서적 동의보감(東醫寶鑑)과 중국 명나라의 형법전인 대명률(大明律) 등 도난 문화재 3800여 점이 경찰 수사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전국 곳곳의 사적지나 사찰을 돌며 문화재를 훔친 설모 씨(59)와 절도범 김모 씨(57), 사립박물관장 김모 씨(67), 문화재 매매업자 이모 씨(60) 등 18명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습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고서류 2758점과 도자기류 312점 등 문화재 총 3808점을 회수했습니다. 문화재 매매업자인 이 씨는 1999년 절도범 김 씨로부터 사들인 동의보감을 경북에 있는 한 사찰에 2000만 원을 받고 판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명의(名醫)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은 광해군 5년(1613년)에 총 25권 25책으로 간행된 것입니다. 이번에 25권 한 세트가 그대로 회수됐습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규장각에 보관된 국보 319-1∼3호의 초판본과 같은 판본이었습니다. 가치로 따지면 권당 2000만 원 이상, 전체는 수십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동의보감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의학서적인 동의보감 초판본과 중국 명나라의 법률서적인 대명률 등 도난 문화재 3800여 점이 경찰 수사로 회수됐습니다. 사진은 이번에 회수된 동의보감.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제공
회수된 동의보감은 20여 년 전 경북 경주의 한 고택에서 도난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경주는 개발이 한창 진행되면서 곳곳에서 고택 철거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절도범 김 씨는 철거를 앞두고 관리가 허술한 고택을 돌며 문화재를 싹쓸이했습니다. 그는 자루를 들고 다니며 고서와 도자기 등을 닥치는 대로 훔쳤습니다. 이렇게 훔친 문화재의 가치를 제대로 따지지도 않고 마대 한 자루에 10만 원씩 받고 팔았습니다. 동의보감도 이렇게 도난당했고 매매업자 이 씨를 통해 사찰로 넘어갔습니다. 경찰은 ‘한 사찰에 장물로 의심되는 동의보감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수사에 나선 끝에 동의보감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경북지역의 한 사립박물관장인 김 씨는 2012년 장물을 취급하는 이모 씨(69)로부터 대명률을 구입한 뒤 4년간 자신의 박물관에 전시했습니다. 김 씨는 이를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유물이라고 속여 올해 7월 보물 1906호로 지정받기도 했습니다. 대명률은 중국 명나라의 법률서적으로 조선의 법률 제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회수된 대명률은 1389년 명나라에서 편찬된 책을 판각해 인쇄한 것입니다.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1397년 반포본보다 앞서는 것이어서 가치를 매기기도 힘든 희귀본입니다.


도굴꾼 설 씨는 2001년 충북 보은군의 한 산성에서 도자기 등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설 씨의 집에서는 삼국시대 도기와 고려시대 청자 등 문화재 562점이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2년에 걸친 수사 끝에 이들을 모두 붙잡고 문화재를 회수했습니다. 이번 수사에는 70세가 넘은 고령의 도굴꾼과 절도범의 정보 제공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을 상대로 ‘어차피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 문화재만이라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설득해 상당수 문화재를 회수할 수 있었다”며 “적발된 사람들도 모두 문화재 은닉 혐의만 적용돼 구속을 면했다”고 말했습니다.

의정부=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