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대충 입는 사람, 성공한 경우 보기 힘들다고?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1-01 1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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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장미라사의 이영원 대표. “옷은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그릇”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두 가지 원단을 재치 있게 덧대어 만든 양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대한민국 정치인과 기업인이 대거 양복을 맞추던 맞춰 입던 곳이 있었습니다. 국회 인근 식당서 "국회 부근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 양복 재킷이 뒤바뀌어 있다는 있다"는 농담 섞인 말도 이 양복점 때문에 나왔습니다. 같은 양복점에서 곳에서 옷을 맞춘 이들이 식당에 재킷을 걸어뒀다가 다른 사람 남의 옷을 입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1956년 삼성 제일모직 사업부에서 시작해 올해 60주년을 맞이한 장미라사의 '장미라사'의 이야기입니다. 그 사이 장미라사는 삼성에서 분사했고 당시 지배인이 지분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 장미라사에서 이영원 장미라사 대표(58)를 만났습니다.



이 대표는 어릴 때부터 양복에 매료됐습니다. 부산 보수동 책골목에서 일본 패션잡지를 뒤적이고 국제시장에서 원단을 끊어 옷을 만들어 입던 그는 고교 졸업 직후 직후인 1977년 삼성에 입사해 30년 가까이 장미라사에 매달려왔습니다. 패스트패션의 시대에 '맞춤 양복'이 유효한지부터 궁금했습니다.

"컴퓨터로 스캔을 떠서 입체 제작하면 몸에 가장 정확하게 맞는 양복이 나오겠죠. 하지만 양복은 몸에 단순히 걸치는 옷이 아니에요. 사람의 골격과 움직임을 제대로 이해해 기계로 구현할 수 없는 우아한 아름다움을 담아내죠."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 영국의 찰스 왕세자 등 국내외 인사들이 장미라사에서 옷을 맞췄습니다. 특히 이 회장의 옷 심부름을 도맡았던 이 대표는 그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했습니다.


"이 회장님은 탐미주의자였어요. 하루에도 양복을 두어 차례 갈아입고, 바지를 맞출 때에도 길이를 5㎜ 단위로 수정해가며 자신에게 완벽한 양복을 만들려하셨죠. 또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1983년)한 뒤엔 머리를 메탈 그레이로 염색하고 양복도 실버 그레이색을 입을 정도로 패션을 통해 경영철학을 표현할 줄 아는 분이었어요."



맞춤 양복에 확신을 가진 그는 1998년 장미라사 지분을 인수해 대표가 됐다. 하지만 당시는 외환위기 직후. 불황에 가격경쟁으로 생존의 기로에 섰습니다. 그는 다시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이탈리아 재단사들은 오히려 더 미련하게 양복을 만들고 있었죠. 패턴도 손으로 그리고 바느질도 한국과 달리 했어요.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였죠. 현지에 집을 구하고 재단사를 보내 바느질부터 다시 배우게 했죠."

기존엔 바느질 한 번에 여러 땀을 꿰어 원단이 밀려 라인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이를 한 땀 한 땀 꿰매 홑겹들이 압착되게 했습니다. 간단히 보여도 이 방식을 바꾸기까지 8년이 걸렸습니다.


"오래 했다고 장인이 되는 건 아니죠. 살아남으려면 기존의 자신을 철저하게 깨부술 수 있어야 하니까요."

한때 서울 명동·소공동 일대 500여 곳에 이르던 양복점이 지금은 10곳 정도로 줄었지만 장미라사는 건재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양복 한 벌에 바느질 2만 5000여 땀. 치수를 재고 원단을 고르고 가봉하고…. 최소 2, 3주가 걸립니다. 패션에 관심 많은 20~40대들은 이런 '느린 패션'에 열광합니다. 취직하면 장미라사 양복 한 벌 장만하는 게 꿈이었다며 옷을 맞춰가는 지방의 젊은이도 있습니다. 갤러리아 명품관에도 해외 명품 브랜드들과 나란히 입점해 진열돼 있습니다.

"옷은 자신과 상대에 대한 관심입니다. 대충 옷 입는 사람치고 성공한 사람은 드물걸요. 자신과 주변에 소홀할 가능성이 크니까요. 또 좋은 옷을 입어도 개인의 품격이 배어나오지 않으면 옷은 번지르르한 포장에 불과해요. 이게 한번에 되지는 않습니다. 꾸준히 자신을 파악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그는 "남자도 우아할 수 있단 걸 보여주고 싶다"며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에서 풍기는 절제미를 옷에 담는 게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