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물 2ℓ를 마셔야 한다?" 그럴 필요 없다!

주간동아
주간동아2016-10-31 10:5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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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은 목이 마르지 않으면 물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
- 출처 미상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의 여파인지 10월 중순까지도 마치 초가을처럼 낮에는 여전히 더웠다. 그런데 10월 하순 어느 날 아침, 밖으로 나서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든다. 이처럼 갑자기 늦가을로 접어들면서 겨울 채비를 하게 생겼으니,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가 살기 좋다는 말에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격렬한 운동으로 땀을 많이 흘린 뒤에는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8월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6 K리그 클래식’ 수원 삼성과 울산 현대의 경기에서 잠시 경기가 중단된 사이 심판과 양 팀 선수들이 물을 마시고 있다. [동아일보]
수분 섭취는 음식물로도 충분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다가오면 특히 여성은 피부에 부쩍 신경 쓴다. 여름이 덥고 습하기는 하지만, 땀 덕분에 피부 관리가 저절로 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가을과 겨울은 날씨가 추울 뿐 아니라 건조해 피부에게는 시련기다. 아침저녁으로 씻은 뒤 기초화장품(보습제)을 충분히 발라주지 않으면 ‘촉촉한’ 피부를 기대하기 어렵다.



피부에 보습제를 바르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이맘때면 여기저기서 물을 충분히 마셔서 몸속 수분을 보충해야 한다는 조언이 들린다. 특히 ‘하루에 물 여덟 잔은 마셔야 한다’ 또는 ‘하루에 물 2ℓ는 마셔라’ 등 물의 양까지 정해주기도 한다. 물 한 잔이 250㎖라고 하면 사실 이 둘은 같은 얘기다(250㎖×8=2000㎖=2ℓ).

‘하루에 물 여덟 잔’ 예찬론자에 따르면 충분한 수분 섭취가 피부에만 좋은 게 아니라고 한다. 물을 충분히 마셔야 체내 노폐물을 깨끗하게 배출할 수 있고 변비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염소똥은 수분 함량이 낮다!). 또 물로 배를 채우니 간식이나 야식 유혹에도 더 잘 견딜 수 있단다(물론 칼로리는 없으므로 뇌를 속이는 것이지만). 수돗물을 믿을 수 없어 매일 2ℓ짜리 생수를 한 병씩 사 먹는다고 해도 커피 반 잔 정도의 가격밖에 안 되니 부담도 적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하루에 물 여덟 잔’ 건강법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반론에 따르면 물은 ‘목이 마를 때’ 마시면 된다. 한여름에 계속 밖을 돌아다니거나 축구 같은 격렬한 운동으로 땀을 많이 흘려 갈증이 심할 때는 여덟 잔이 아니라 열여덟 잔도 마실 수 있지만, 요즘처럼 기온이 떨어져 가만히 있어도 목마를 일이 없으면 일부러 마실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진영을 대표하는 사람이 미국 인디애나대 의대 소아과 교수인 애런 캐럴 박사다. 그는 2009년 동료 레이첼 브리먼 박사와 함께 집필한 책 ‘내 남친은 발 사이즈가 크다’에서 여러 가지 잘못된 건강상식을 폭로하며, ‘하루 물 여덟 잔’ 조언도 비판했다. 이 책에 따르면 이런 세간의 상식은 1945년 나온 한 발표가 왜곡된 결과다.

당시 미국 국립연구위원회의 식품 및 영양 부서는 ‘성인은 하루에 2.5ℓ의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하면서, ‘필요한 수분의 대부분은 하루 동안 먹는 음식에 들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뒷문구가 사라지고 앞문구의 소수점 뒤 숫자도 사라지면서(그나마 다행이다!) ‘하루에 물 2ℓ를 마셔야 한다’는 ‘건강상식’이 널리 퍼졌다. 이 왜곡된 조언을 따르자면 음식으로 섭취하는 수분과는 별도로 물 2ℓ를 마시게 되는 셈이다.

이를 지적한 캐럴 박사 등은 “물을 좋아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루에 물을 반드시 여덟 잔 이상 마셔야 한다는 주장의 과학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정말로 걱정해야 하는 것은 수분을 과다하게 섭취하는 경우”라고 덧붙였다. 즉 갑자기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수분중독 증상이 일어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외국에선 ‘물 많이 마시기 대회’ 같은 행사에서 사망자가 나온 일이 몇 번 있다.

수분중독은 물을 지나치게 마실 때 나타나는 증상을 일컫는데, 체액이 묽어져 나트륨 같은 이온 농도가 떨어지면서 경련이 생기고 혼수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조현병 환자 가운데 병적으로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수분중독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사실 혈관이나 신장에 이상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하루에 물 여덟 잔 정도를 추가로 마신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화장실을 몇 번 더 가는 게 귀찮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한 번에 한두 잔씩 몇 시간 간격을 두고 나눠 마시는 경우에 대한 얘기다. 만일 고지식한 사람이 하루 종일 바쁘게 보내다 밤에 문득 ‘그러고 보니 오늘 물을 한 잔도 안 마셨네’라며 한 번에 큰 생수통 한 병을 다 비운다면 자칫 큰일이 날 수도 있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sukkikang@gmail.com‌‌섬네일=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