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항기 “전쟁통에 거지생활, 동생 윤복희 때문에 살았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0-28 10:4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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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겨울, 서울에는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쳤어요. 시장 좌판 아래 떨어진 떡 몇 점을 주워 먹으며 겨울을 났죠. ‘이대로 죽는 걸까’ ‘차라리 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어요. 열몇 살짜리 꼬마가 말이죠.”

‘한국 그룹사운드 1세대’ 윤항기 씨(73)가 기억하는 동생인 가수 윤복희 씨(70)와의 어린 시절입니다. 부모를 여의고 죽을 고비를 수백 번 넘겼지만 동생 때문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가 3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KT스퀘어에서 비영리 민간단체 라이프가 주최하는 ‘생명은 살라는 명령’ 강연에서 삶을 내려놓고 싶었던 시절을 극복한 경험을 전합니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윤 씨는 미8군에서 활동하던 작곡가 김희갑 씨를 만나 음악을 배우며 1959년 국내 최초의 록 그룹 ‘키보이스(Key Voice)’로 데뷔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 ‘나는 어떡하라고’ 등의 인기곡과 함께 가난도 극복했습니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 1977년 폐결핵으로 돌연 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가난을 극복하겠다”며 무리하게 활동한 탓입니다. 그는 “가족에 상처로 남는 게 싫어 살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고 회고했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동생과 1979년 ‘여러분’으로 서울국제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이혼 등 가정사로 힘겨워하던 동생에게 위로가 되고자 만든 곡입니다. 그는 “아픔이 있는 우리를 지켜달라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만들었다”며 “리메이크와 패러디로 더 많은 이들에게 메시지가 전해져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1987년 신학 공부를 시작해 1990년 미국 미드웨스트대에서 국내 최초 ‘음악목사’ 안수를 받아 종교인의 길로 들어 선 것도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느덧 데뷔 57주년. 윤 씨는 올 4월 ‘데뷔 55주년 기념 콘서트’를 개최한 ‘현역 음악인’입니다. 2014년 열려다 그해 세월호 참사, 지난해 메르스 파동 등 국가적 재난으로 연기했던 공연으로 그의 뜻에 따라 그대로 ‘55주년’ 제목을 붙였습니다. 12월 22일에는 서울 강남구 언주로 압구정예홀에서 유현상 김흥국 장미화 등 ‘예우회’ 동료 연예인들과 무료 자선 콘서트를 엽니다.

“3년 뒤면 데뷔 60주년이에요. 이 나이가 되니 앞으로의 계획보다는 오늘의 삶에 충실하게 됐죠. 지금 이 순간을 행복이라 여기는 마음의 중요성을 모두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서형석기자 skytr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