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만 흉내냈다면 18년 못버텼죠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0-27 11: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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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에 약 30건의 방송 일정을 소화하는 배칠수 씨. 지난달부터 자동차 제작 업체 대표를 맡는 등 또 다른 삶을 준비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타인의 이름이 진짜 내 이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44년 중 18년을 다른 사람처럼 살아온 사람이 있다. 자신의 본명도 감췄다. 하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인생’을 살며 식지 않은 인기를 얻었다. 지금은 “타인의 이름이 진짜 내 이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성대모사의 달인 배칠수(본명 이형민·44) 씨를 서울 마포구 상암 디지털미디어센터(DMC)에서 만났다.

 “점심 먹으면서 인터뷰 하시죠.” 인터뷰 시간은 1시간을 넘길 수 없었다. 낮 12시에서 오후 2시까지 tbs라디오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를 진행한 뒤 오후 3시 MBC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는 사이 짬을 내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서울 중구 남산에 있던 tbs 사옥이 올해 7월 DMC로 옮겨오면서 겨우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1주일에 약 30건. 체력 부담을 느껴 예전보다 크게 줄였다. 전성기 때는 하루 7건 이상씩 스케줄을 소화했던 그다.

 그의 목소리는 1999년 ‘FM 음악도시’부터 전파를 탔다. 그 후 ‘배철수의 음악캠프’ ‘와와쇼’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등 간판급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생의 4할을 ‘이형민’이 아닌 ‘배칠수’로 살았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 등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곧잘 흉내 내긴 했지만 그게 직업이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고등학교 때는 프로 보디빌더를 꿈꿨고, 대학도 재능대학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했다. 잠시 헬스클럽도 경영하다 아내의 권유로 출전한 성대모사 대회 ‘슈퍼보이스탤런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타면서 인생 행로가 크게 바뀌었다.

 정작 ‘자신’이 지워져 아쉽지는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딱 부러지는 답이 돌아왔다. “가끔은 본명을 저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내다 서류 같은 데 서명할 일이 생기면 그때야 ‘아, 내 본명이 이형민이었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 목소리를 빌렸을 뿐 내 생각을 얘기하고 내 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진행자, 담당 PD와 자신이 맡는 코너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도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한다고 한다.


자동차 회사의 톱리더 직책을 9월부터 맡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프로’ 의식에 놀란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방송도 그 때문에 차질이 생긴 적은 없다. 그는 다음 날 일할 때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고 싶어서 뒤풀이나 술자리도 전혀 가지 않는다. 그래도 배철수 씨를 비롯해 최양락 전영미 씨 등 그와 일을 해봤던 사람들은 그와 무척 가깝게 지낸다고 한다.

 단순히 연기할 대상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투나 습관이 생긴 배경까지 철저히 연구한다.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준비하면서 ‘에∼’ 하는 추임새의 배경을 찾아봤더니 즉흥 연설이 많기 때문이었다. 가장 적절한 용어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나왔던 것”이라며 “반면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별로 막힘이 없었는데, 미리 작성된 연설문을 낭독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는 “일단 방송인 생활 20년을 채운 뒤 다음 인생을 고민하겠다”고 말해 왔다. 2년 후면 20년이 된다. ‘제2의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형민의 목소리가 나왔다.

 “단종된 자동차를 새 차처럼 제작하는 자동차회사 ‘모헤닉 게라지스’의 톱 리더 직책을 9월부터 맡게 됐습니다.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하는 책임 있는 자리입니다.”

 그는 구형 자동차 모델 마니아였다. 지금도 1990년대 초 생산된 갤로퍼 승용차를 새 차처럼 만들어 타고 있다.

 “2년 뒤에도 방송 생활을 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얼굴 마담’으로 자동차 회사 일을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