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없는 자와 볼 수만 있는 자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0-27 10:37:41
공유하기 닫기
“제 눈을 드리고 싶은데….” ‘천안 사는 30대’라고 자신을 밝힌 남성에게서 연락이 온 건 2010년이었습니다. '틴틴파이브' 출신 개그맨 이동우 씨(46)가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은 지 6년 만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 방황하던 때였습니다. 의학적으로 ‘안구 이식’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도 ‘누가 나에게 눈을 준다는 건지 만나보기나 하겠다’며 그를 찾아간 이 씨는 진짜 눈 대신 마음의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 역시 온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살아가는 근육병 환자였기 때문입니다.》
 
볼 수 없는 이 씨와 오직 볼 수만 있는 임재신 씨(44), 비슷한 삶의 무게를 진 두 사람은 그렇게 친구가 됐습니다. 다음 달 이들의 소박한 제주 여행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시소(SEE-SAW)’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 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이제 곧 천만 배우가 될지도 모르는데…” 하며 농담부터 건넸습니다.

“정말 일석이조 아닌가요? 둘 다 몸이 불편해 자주 못 봤는데 영화 촬영도 하고 술도 한잔하며 오래 시간을 보낼 수 있잖아요. ‘스태프도 있는데 큰 사고야 나겠어? 이럴 때 둘이 여행이나 신나게 해보자’ 싶었던 거죠.(웃음)”



더 이상 웃길 수 없게 돼버린 ‘시각장애 개그맨’을 사람들은 동정하곤 합니다. 하지만 “눈이 안 보이니 밖에 나가는 대신 차분히 음성도서를 읽는 습관이 생겼다”며 ‘시각장애인의 장점’을 줄줄이 꼽아보는 이동우 씨.



2000년 당시 활동하던 틴틴파이브의 무대

‌“옛날요? 틴틴파이브 시절 인기 정말 많았죠. 돌이켜보니 돈과 명예에 집착하던 그때가 부끄러운 건 왜일까요. 고작 3, 4시간 자면서도 나이트클럽 가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그랬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몸을 좀 아낄 걸 그랬나 봐요. 하하.”


시력을 잃은 후 그는 더 많은 수식어를 얻었습니다. 2013년엔 재즈 보컬리스트로 솔로 앨범을 발매했고, 연극배우 활동은 물론이고 매니저의 권유로 철인 3종 경기까지 참가했습니다. 최근에는 블로그 운영에 재미를 들였는데 일상 속 ‘100인의 영웅’을 찾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일을 하는 게 늘 재밌어요. 요새 뉴스 보면 잔인하고 듣기 싫은 못된 소식만 들려오잖아요. 비록 시시한 얘기일지라도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블로그는 시청률, 청취율 안 나와도 상관없잖아요.”

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그런 바람에서라고 했습니다. “영화 제목도 제가 지었어요. ‘시력을 잃고 비로소 보게 된 세상’이란 의미죠. 사실 어마어마한 철학이 담긴 영화는 아니에요. 이 영화를 보면 무조건 마음이 따뜻해질 거란 얘기도 하고 싶지 않고요. 다만 ‘사랑’이 어떤 걸까, 관객들이 잠시나마 생각해 볼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인터뷰 내내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그는 천생 개그맨이었습니다. 본업이던 ‘개그맨’으로서의 활동 계획을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 ‘딴따라’예요. 광대가 외줄도 탔다가, 내려와서 광대놀이도 하는 거죠 뭐. 당연히 개그도 너무 하고 싶어요. 다만 지금은 제가 몸개그라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다들 웃기기는커녕 불쌍하다고 눈물 흘리실걸요. 제 개그에 사람들이 편견 없이 웃을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일단 기다려 보려고요. 음, 오겠죠?(웃음)”


장선희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