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식사에 묘한 압박감…혼밥-혼술에 도전하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0-26 10: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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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진정석(하석진·위쪽 사진, tvN 제공)이 혼술을 하고 있는 장면. 혼밥을 꽤나 경험해본 에이전트41(김배중 기자·아래쪽 사진). 혼밥 고수들은 “기왕이면 깔끔한 차림새로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주문하라”고 조언했습니다.

‌‘홀로 된다는 것’. 말처럼 간단치 않습니다. 최근 ‘혼밥(하기 좋은) 식당’ 소개 글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심지어 공력을 가늠하는 ‘혼밥 레벨 테스트’까지 나왔습니다. 1∼10단계가 있는데 편의점, 패스트푸드는 초보 수준이랍니다.

기자들이 상위 레벨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혼밥 하수인 에이전트2(정양환 기자)가 패밀리레스토랑과 점심 때 줄서는 맛집에, 중수 이상인 에이전트41(김배중 기자)이 고깃집과 뷔페를 체험했습니다. 혼밥에는 어떤 미학과 고충이 담겨 있을까요.




○ “여성 가득한 승강기에 남자 홀로 탄 기분”

먼저 에이전트2가 레벨7 ‘맛집 혼밥’에 나섰습니다. 장소는 서울 중구 유명 냉면집. 낮 12시 언저리라 대기 줄이 깁니다. 의외로 줄 서고 자리 앉는 건 쉬웠습니다. 딱히 신경 쓰는 이도 없습니다. “몇 명이세요?” 물을 때 “1명요”에서 목소리가 작아졌을 뿐. 주문 뒤에도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면 됩니다. 현대문명에 경의를. 후딱 ‘미션 클리어’ 해야지.

사건은 한창 젓가락질하는 와중에 발생했습니다. “손님, 합석 되죠?”에 답할 겨를도 없이, 여성 2명이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앞자리 남정네가 ‘윌슨’(MBC ‘나 혼자 산다’ 곰 인형)으로 보이나. 온갖 수다를 쏟아냈습니다. 난 냉면 먹으며 왜 립밤 구입 요령을 배워야 하나.


다음 날, 레벨8 패밀리레스토랑. 역시 점심때라 바글바글. 한 번 해봤다고 성큼성큼 들어섰습니다. 설마 여긴 합석은 없겠지. 헉, 근데 90% 이상 여성 고객. 이성만 잔뜩 탄 엘리베이터에 발을 내딛는 느낌이랄까요. 흘깃흘깃 쳐다본다는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매력도 있습니다. 요리에 집중하기 좋았습니다. 브로콜리가 꼼꼼히 씹으면 이런 식감이구나. 육질도 입에 착착 감겼습니다. 후배에게 온 업무 문자도 반가웠습니다. 바쁜 짬을 쪼개 여유를 즐기는 문화인. 살짝 우쭐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긴장을 놓친 탓일까요. 디저트를 기다리며 웹툰을 보다 ‘킥’ 웃음이 터졌습니다. 아뿔싸. 0.1초 찰나 모여든 눈빛. 땀방울이 피처럼 흘러내렸습니다. 앞으로 혼밥 때 개그 만화는 안 보는 걸로.



레벨9 뷔페 혼밥에 도전한 ‘에이전트 41’ 김배중 기자
○ “천하에 홀로 위대(胃大)하리니”


레벨9 뷔페에 나선 에이전트41. 평소 혼밥을 가뿐히 여긴 터라 ‘마실’ 나가는 기분. 일부러 유동인구 많은 홍익대 인근으로 골랐습니다.

아, 고등학생 단체손님이 있을 줄이야. 교복에 둘러싸인 스타의 꿈을 잡채 앞에서 이루다니. 음식을 담으러 갈 때마다 자꾸 타이밍을 노리게 됩니다. 너무 많이 담았는지 ‘자기 검열’까지 하게 됩니다.

테이블에 남겨둔 가방도 신경 쓰입니다. 메고 가면 더 이상하겠지? 40대 혼밥 고수 A 씨(자영업자)는 “화장실 등 잠시 자리 비울 때가 가장 불편하다”며 “간혹 음식을 치우기도 하니 종업원에게 말해 두는 게 상책”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중수 이상인 에이전트41은 곧 적응을 마쳤습니다. 커피랑 아이스크림을 가져와 ‘아포가토’도 제조해 먹었습니다. 그러나 목표량을 채우진 못했습니다. 혼밥의 다이어트 효과인가 봅니다.

마지막 레벨10 ‘고깃집 혼술’. 난세지웅(亂世之雄). 이번엔 직장인 퇴근시간을 골랐습니다. 왁자지껄한 삼겹살 집에서 홀로 고기를 굽노라니 돼지를 평정한 장수가 되었구나 싶었습니다. 들락날락거리는 뷔페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3인분에 소주 1병, 밥 한 공기와 된장찌개를 해치웠습니다.


그러나 묘하게 ‘심리적 압박’이 밀려오는 고비가 있습니다. 이상하게 고기가 안 익는 불판. 1인분을 3번째 시킬 때 이모의 눈빛. 소주 한잔에 저절로 나온 ‘캬’. 그걸 다 먹고 혼자 계산하는 카운터 앞. 위대(偉大)하고자 했으나 위대(胃大)만 했던 게 아닐까요. 왜 그럴까요. 또 다른 고수인 30대 직장인 B 씨는 이를 ‘모호한 정체성 탓’이라 진단했습니다.

“게임하듯 접근해서 그래요. 혼밥혼술의 핵심은 ‘자기 위안’에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성가시기 싫고,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스스로 다독거리는 거죠. 거기에 무슨 유별남이나 독특함이 필요할까요? 각자 취향 따라 사는 생활 방식일 뿐입니다.”

혼밥혼술은 무슨 유행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의 일상일 뿐. 거기에 색안경을 쓰고 덤빈 요원들이 문제였습니다. 우리 이제 혼밥을 그냥 내버려둡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