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이 ‘아라리요!(ARARI·YO!)’

매거진D
매거진D2016-10-25 15: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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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튜브 영상 ‘아라리요(ARARI, YO) 평창’ 캡처
너무 가까웠다. 오랜만의 결혼식이라 거울을 한참 보았다. 거울을 오랫동안 쳐다보면 미남의 기준은 내 얼굴이 된다. 어쨌든 집을 나섰다. 안 입던 정장도 꺼내 입었는데, 문제는 몸이었다. 살이 많이 쪄서 과거의 영광(?) 같은 근육은 사라지고 살덩어리만 남았다. 터질 것 같은 정장이 안쓰러웠다.

생각해 보니 집에는 전신 거울이 없었다. 나란 존재는 얼굴만이 아니라 몸과 팔다리가 전부 붙어 있는데, 그 동안 얼굴만 신경 쓰고 살았던 것이다. 그러니 타인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몰랐다. 자신을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형상, 모습을 알아야만 한다. 집에는 몇 걸음 더 떨어져서 봐야할 전신 거울이 필요했다.



문제의 ‘아라리요 평창’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도 전신 거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획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참고로 이 뮤직비디오는 해외에 홍보하기 위해 만든 영상이다. 그렇다면 기획단계에서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과 평창이 어떤 곳인지, 또 외국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사했어야만 한다. 아쉽게도 뮤직비디오에서는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사진=유튜브 영상 ‘아라리요(ARARI, YO) 평창’ 캡처
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가

‌솔직히 고백하면 이 뮤직비디오를 정주행하지 못했다.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고, 고어 영화와 짤방 중독자인 나조차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기사를 쓰기 위해 다시 뮤직비디오를 보았다. 끝까지 다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을 위해 ‘아라리요 평창’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


‘아라리요 평창’의 시작은 이렇다. ‘캔 스톱 무빙(Can't Stop Moving)' 바이러스가 평창에 창궐한다. 이 바이러스는 대한민국 한의 역사를 상징하는 아리랑을 요즘 세대가 좋아하는 힙합에 접목해 만든 노래다. 듣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춤을 춘다는 매우 무시무시한 질병이다. 다행인 점은 국민 대다수가 이 질병에 면역을 지니고 있고, 매우 강한 저항력도 갖추었다. (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흥이 났다면 자신의 ‘국뽕’ 면역체계를 의심해봐야 한다.) 이 바이러스가 탄생하게 된 것은 외국인들이 이 뮤직비디오의 노래와 춤을 따라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전 세계적인 이슈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였다.

뮤직비디오에서는 평창 동계 올림픽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우선 배경이 강원도이고, 영화 ‘국가대표’의 스키점프 훈련 패러디, ‘쿨 러닝’의 봅슬레이 훈련 패러디, 최근 국내에서 인기 있는 미국 케이블 방송의 MC인 코난 오브라이언을 패러디하기도 한다. 그리고 tvN ‘SNL 코리아’에 출연 중인 정성호, 김준현, 또 가수 효린이 등장해 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아라리요 댄스 샘플을 선보인 셈이다. 보고 있노라면 연예인들 섭외만큼이나 안무를 짜는 일도 수고로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안무가 선생님에게 작은 박수를.



코난이라고 합니다. 사진=유튜브 영상 ‘아라리요(ARARI, YO) 평창’ 캡처
‘아라리요 평창’은 문화 콘텐츠에 대한 지자체의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자체는 유튜브와 같은 영상 기반 소셜미디어를 바이럴마케팅에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심한다. 실제 관공서에서는 플래시몹 영상을 시도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이유는 이렇다. 지자체에서는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원인은 모른다. 원인 파악을 하지 않은 채 형식만 맞춘다. 그냥 출연자들이 웃고, 춤추면 사람들이 좋아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익명의 세계, 인터넷은 냉혹하다. 안 웃기면 욕먹고, 웃겨도 욕먹는다. ‘좋아요’를 받으려면 엄청나게 웃겨야만 한다. 그러니 예산을 투입해 웃기려거든 최근 농담의 코드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전 세계 악플러들도 인정할 개그를 짜내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인터넷의 유머 패러다임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 때문에 결재 보고 체계를 갖춘 관공서가 그 속도를 따라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성공한 사례는 고양시청의 트위터, 성남시의 재활용 캐릭터 큐라레, 부산경찰 페이스북 등이다. 이들은 인터넷 패러다임을 정확히 해석하고, 발 빠르게 활용했다.




사진=유튜브 영상 ‘아라리요(ARARI, YO) 평창’ 캡처

‌노래 ‘아라리요!’를 듣다보면 의구심을 갖게 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아리랑을 세계인이 친숙하게 느껴야할 이유는 뭘까? 이미 지정됐으면 된 것 아닌가? 김치와 싸이를 좋아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설마 평창은 아리랑과 김치, 싸이의 고장인가? 이제는 2016년의 대한민국스러운 것과 조선적인 것을 구분해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언제까지 주모만 찾을 것인가? 국민은 ‘국뽕(무조건적으로 한국을 찬양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에 지쳤다. 자랑스럽지만, 스스로 칭찬받기 위해 안달이 나서 칭찬 받을 때까지 물어보는 어린애들 같아서 민망하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국민은 대한민국의 모습을 외부에 보여주길 원한다. 하지만 그게 꼭 자랑거리일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슈퍼마리오가 없고, 피카츄와 도라에몽도 없다. 그러니 아베가 튀어나오는 도쿄올림픽 홍보 영상 같은 것을 만들 수 없다. 반드시 웃겨야 할 필요도 없다. 대중은 평창올림픽에 웃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는 조금 더 솔직해져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 우리가 듣고 보고 만지는 일상의 것들을 체험하기 위해 많은 외국인이 방한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사진=유튜브 영상 ‘아라리요(ARARI, YO) 평창’ 캡처

‌이번 ‘아라리요 평창’사태로 인해 평창올림픽과 관련해 문화 콘텐츠를 제작하는 담당자들은 난처할 것이다. 이슈를 만들어야 하는데, 윗선이 원하는 것과 대중이 원하는 것의 간극에서 오는 괴로움일 수도 있겠다. 2억7000여만 원의 예산을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그 논란은 정확한 거래명세서를 살피고 나서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이 뮤직비디오를 보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은 ‘아라리요 평창’은 공식 홍보영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흥행이 되면 좋고,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단지, 아쉬운 점은 21세기 가장 무더운 여름날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고생한 일이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과 부끄러움이 국민의 몫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radioplay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