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누구나 겪을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0-24 13:52:53
공유하기 닫기
카나 에노모토 미국 약물남용정신건강서비스국(SAMHSA) 국장이 13일 국립정신건강센터 개원 기념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해 정신질환 조기 치료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카나 에노모토 美 정신건강서비스국장
“적절한 치료 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 만드는 게 중요”

 “겉으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자녀와 친구도 심각한 정신질환을 겪고 있을 수 있습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개원 기념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카나 에노모토 미국 약물남용정신건강서비스국(SAMHSA) 국장(47·여)은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SAMHSA는 미국 보건부 산하 정신건강서비스 기관. 직제상 식품의약국(FDA)과 동급이다.

 에노모토 국장의 말엔 경험에서 우러나온 성찰이 담겨 있다. 그의 가족은 의사와 변호사, 금융인 등을 배출한 명망가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아픔도 있다. 아버지는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았고, 어머니는 치매, 형제는 섭식장애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에노모토 국장 본인도 어렸을 적 가정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남아 항우울제를 복용했다. 특히 조울증에 시달리던 20대 초반인 올케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는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고 싶다’며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해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누구도 우리 가족의 속사정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게 바로 지금 당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SAMHSA는 최근 일선 학교와 보건소에 정신건강 전문가를 배치해 정신질환을 초기에 치료·예방하는 ‘첫 사건(First Episode)’ 프로그램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신질환 증상이 나타난 뒤 처음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을 단축하는 게 목표다. 그는 이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불이익으로 작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민간보험 가입이 제한된다는 말에 그는 “끔찍하다”고 논평한 뒤 “미국에선 장애로 인한 보험 가입 제한이 2010년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 이후 금지됐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꺼리는 한국 내 분위기를 전하자 그는 “한국의 학부모는 자녀의 교육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니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성적에 도움이 된다’고 홍보하라”는 뼈 있는 농담을 했다. 미국에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처음 찾은 청소년들을 인종별로 비교 연구한 결과 한국계와 일본계 학생의 상태가 훨씬 심각했고, 이들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는 것. 신체질환이 공부에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정신질환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학업 성취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학부모에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에노모토 국장은 특히 ‘누구나 정신질환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울해하는 사람에게 “저절로 나아질 테니 힘내라”고 하는 건 다리뼈에 금이 간 사람에게 “괜찮아질 테니 계속 달리라”고 하는 거랑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