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낮잠을 팝니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0-19 17: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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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낮잠에 돈 쓰는 게 트렌드입니다. 서울 여의도 CGV에선 1만 원이면 시에스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월요일에서 목요일, 오전 11시30분에서 낮 1시까지 점심시간의 낮잠을 파는 셈이다. 

‌19세 이상 성인만 이용할 수 있는데, 잠이 잘 오라고 차도 한 잔 주고, 아로마 향과 힐링 음악, 거기다가 담요와 슬리퍼도 줍니다. 프리미엄관에서만 운영하는 서비스인데 이곳에는 등받이를 180도까지 젖힐 수 있는 푹신한 의자가 있습다. 누가 이용할까 싶겠지만 직장인 밀집지역인 여의도에선 꽤 인기 많은 서비스라네요.

과거 직장인들은 전날 과음하거나 야근해서 피곤하면 사우나에 갔습니다. 여의도에는 점심 때 노래방이나 단란주점 등이 낮잠이나 흡연용으로 룸을 빌려주기도 하는데, 직장인 밀집지역에선 오래전부터 이런 틈새 비즈니스가 있었습니다.



이젠 몰래 낮잠 자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자는 시대입니다. 서울에도 수면카페가 2014년 처음 등장한 이후 계속 늘어나더니 이젠 서울 전역에 50여 개나 되죠. 일본에선 1990년대부터 유료 수면카페가 있었고요. 인천공항을 비롯한 세계 많은 공항들이 수면캡슐을 설치하고 있고, 기업들도 직원들의 낮잠을 위해 수면시설을 만드는 추세입니다.



현대화, 산업화가 되면서 낮잠 자는 문화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유지되던 스페인에서도 시에스타 폐지론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낮잠 자는 문화가 사라진 직장에서 직장인이 졸음을 쫓기 위해 선택하는 최선의 방법은 커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커피산업이 지난 20년간 가장 크게 성장한 산업 중 하나로 꼽히는 것과 현대화된 직장 문화에서 낮잠 문화가 사라진 것이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연 낮잠은 시간낭비일까요? 미국 수면학회와 항공우주국(NASA) 등의 실험 연구를 보면 낮잠을 20~30분 잤을 때 집중력과 업무수행 능력이 향상된다고 합니다. NASA 연구진은 ‘단지 26분의 낮잠으로 업무 수행 능력은 34%, 집중력은 54%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왜 세계적인 기업들이 직원들의 낮잠을 위해 투자하는지 우리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죠.

참고로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은 2위(1위를 고수하다가 근소하게 밀려남)지만 수면시간은 꼴찌입니다. 즉 가장 잠을 안 자고 일만 많이 하는 나라라는 거죠. 낮잠 트렌드와 수면 비즈니스가 번창하는 데 이만큼 좋은 나라가 또 있을까요?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