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년 지나 마침내 선택받은...바로 그 ‘똥 화석’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0-19 14: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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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경남 창녕군 비봉리 유적에서 임학종 국립김해박물관장이 발굴 당시를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뭇조각 등 유기물질이 남아있는 저습지 유적을 처음 본 순간 대박을 예감했다”고 말했습니다. 창녕=김경제 기자
“저 논바닥 보이죠? 이곳이 8000년 전에는 바다였습니다.”

14일 경남 창녕군 비봉리 유적 전시관 앞. 임학종 국립김해박물관장이 11년 전 발굴 현장을 내려다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습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석기시대 나무배를 비롯해 첫 ‘똥 화석(분석·糞石)’, 멧돼지가 그려진 토기 등이 출토된 대표적인 선사 유적지입니다.





비봉리 유적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나무배’. 기원전 6000년경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입니다. 국립김해박물관 제공
○ 우리나라 최고(最古) 나무배

“발굴을 위해 십자형으로 둑처럼 쌓아 구별해 놓는 곳에 돼지꼬리 모양의 끈이 달려 있는 꿈을 꿨어요. 느낌이 심상치 않으니까 뭔가 납작한 판이 나오면 발굴을 즉각 중단하고 내게 보고해 주시오.”


2005년 6월 초순 임학종은 김해박물관 조사원들에게 느닷없이 꿈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는 꿈에서 본 끈을 배를 접안시킬 때 사용하는 밧줄로 해석했습니다. 주변에서 온갖 물고기 뼈와 조개, 대형 어망추 등이 출토된 정황으로 미뤄볼 때 이곳은 수천 년 전 바닷가였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배도 나올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때까지 일본에서는 조몬 시대 나무배가 130척이나 출토됐지만 국내에서는 신석기시대 배가 나온 적이 없었습니다. 조사원들은 ‘더위를 드셨나…’ 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습니다.

하지만 그의 예감은 적중했습니다. 발굴단이 1시간에 걸쳐 개흙에서 파낸 나무배는 길이 310cm, 너비 62cm 크기였습니다. 배에서 조그만 조각을 떼어내 박성진 경북대 교수(임학)에게 자문한 결과 수령이 약 200년 된 소나무로 판명이 났습니다. 이 배는 올해로 12년째 보존 처리가 진행 중이라네요.



비봉리 유적에서 발견된 ‘도토리 저장 구덩이’(위쪽사진)와 ‘똥 화석’.
○ 첫 ‘똥 화석’ 찾아내려 정성

온전한 형태의 ‘도토리 저장 구덩이’ 87개를 무더기로 발굴해 낸 것도 큰 성과입니다. 이전에 발굴된 것들은 수도 적고 형태도 온전치 않아 정확한 기능을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는데요. 임학종은 이른바 ‘어깨선’(유적 조성 당시의 지층)을 찾는 데 성공해 저장 구덩이의 본래 크기를 밝힐 수 있었습니다.


신석기인들은 채집한 도토리의 떫은맛(타닌)을 없애기 위해 소금기가 있는 바닷물에 일정 기간 보관한 뒤 먹었다고 합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해안가에 구덩이를 판 이유죠. 따라서 도토리 저장 구덩이의 개별 위치를 파악하면 신석기시대 당시의 해안선을 그릴 수 있습니다. 비봉리 일대 내륙이 신석기시대 바다였다는 사실은 자연과학 연구로도 입증됐습니다. 바다에서만 서식하는 규조(硅藻)류가 비봉리 토층에서 검출됐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토된 똥 화석도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더럽다고요? 이른바 ‘화장실 고고학’이 발전한 일본에서는 똥 화석을 선사인의 영양 상태와 당시 식생을 파악하는 자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임학종 관장은 “우리나라는 왜 일본처럼 똥 화석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늘 있었다”며 “비봉리 발굴 현장에서 퍼낸 모든 흙을 삼중(三重) 채로 일일이 걸러 똥 화석을 찾아냈다”고 말했습니다.
  
창녕=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