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역→명품조연→원톱… 참바다씨의 거침없는 질주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10-14 09: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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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박스 제공
‘무명’ 단역에서 ‘명품’ 조연으로, 다시 ‘원톱’ 주연배우로. 
 유해진(46)은 계속 도약하는 배우다. 처음 맡은 배역은 이름도 없었습니다. 1997년 영화 ‘블랙잭’에서 트럭 운전사 조수 ‘덤프1’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간첩 리철진’(1999년)에선 ‘어깨2’로, ‘주유소 습격사건’(1999년)에선 ‘양아치1’로 얼굴을 비쳤습니다.

 그 후 꼭 20년이 흘렀다. 13일 개봉한 ‘럭키’는 유해진의, 유해진에 의한, 유해진을 위한 영화입니다.

 배우 유해진의 가장 큰 매력은 ‘친근함’입니다. ‘타짜’와 ‘전우치’에서 호흡을 맞췄던 최동훈 감독은 “유해진이 나오면 친근감이 생기고 거리감은 확 좁혀진다”고 했습니다. 비단 스크린에서만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에선 소탈하고 인간적인 매력으로 ‘참바다씨’라는 친근한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등산 가면 사람들이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스스럼없이 다가오고 인사를 건네요. 굳이 얘기하자면, 저를 좋아해 주시는 건 친근함 때문인 것 같아요.”(유해진)

 그 친근함에는 동네 아저씨처럼 편안한 외모가 한몫했습니다. 유해진은 중학교 2학년 때 고(故) 추송웅이 연기한 연극 ‘우리들의 광대’ 무대를 보고 배우의 꿈을 꿨습니다.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형편 때문에 예고 진학은 포기했지만, 두 번의 낙방 끝에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줄곧 “배우 외모는 아니다. 다른 길을 찾아봐라” 하는 소리를 들어왔습니다.

 “튀어나온 입이 콤플렉스였어요. 어릴 때부터 못생겼다는 말에 상처는 받았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의 오기는 노력으로 번졌다. 대본이 너덜거릴 때까지 암기하고, 사소한 애드리브까지 미리 구상해 오기로 유명하다. ‘외모 아닌 연기로 승부하겠다’는 각오가 만든 연극 극단 시절부터의 오랜 습관이다. 그렇게 ‘신라의 달밤’(2001년)에선 ‘넙치’ 역을 통해 감칠맛 나는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뇌리에 남았고 ‘타짜’에선 신 스틸러로 등극했습니다. 적잖은 관객들이 ‘유해진’ 하면 영화 ‘해적’에서 선보인 것 같은 코믹한 연기를 떠올리지만, 그는 점차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극비수사’에선 아이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도사 김중산으로, ‘베테랑’에선 재벌 3세 조태오의 재산을 관리하는 오른팔 최 상무 역으로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새 영화 ‘럭키’를 통해서는 특유의 자연스러운 코믹 연기는 물론이고 대역을 최소화한 액션, 여배우와의 멜로까지 다양한 연기를 소화해냈습니다. 냉혹한 킬러가 사건 처리 후 우연히 들른 목욕탕에서 넘어져 과거의 기억을 잃고, 무명 배우 지망생과 목욕탕 열쇠가 바뀌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입니다.

 이계벽 감독이 유해진을 캐스팅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감독은 “현실에서는 잔인한 킬러, 기억을 잃은 뒤에는 순수한 무명 배우를 표현하려면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이 필요한데, 유해진은 잔인함과 순수함을 모두 그려낼 수 있는 배우”라고 말했습니다.

 20년에 걸쳐 원톱으로 ‘등극’했건만 그의 마음가짐은 단역 시절 초심 그대로입니다.

 “역할을 선택할 때 텐톱이든 투웬티톱이든 상관없어요. 앞으로도 역할보다 사람 사는 얘기가 진실하게 묻어 있는 영화를 하고 싶습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