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훈 셰프의 청와대 집밥

여성동아
여성동아2016-10-07 10: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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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은 어떤 음식을 먹을까.
‌봉황 무늬 조리복을 입은 청와대 출신 셰프를 만났다.


‌베일에 가려져 있어 더욱 알고 싶은 대통령의 식탁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해〉)에 독특한 인물이 나타났다. 청와대 양식 조리팀장 출신으로,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부터 올해 초까지 두 분의 대통령을 모셨다며 스페셜 셰프의 자격으로 출연한 한상훈(44)이다. 〈냉부해〉 셰프 군단의 ‘대부’ 격인 이연복 셰프와 맞붙게 된 그는 “VIP(대통령)에게도 비슷한 음식을 낸 적이 있다”며 불고기와 새우를 이용한 ‘타임투새우굿’이라는 요리를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경합에선 승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간 비밀리에 부쳐져 항상 세간의 호기심을 자아냈던 ‘청와대’의 식탁을 책임졌다는 그의 독특한 이력에 눈길이 쏠렸던 것. “VIP의 입맛에 따라 가끔씩 청와대 밖에서 요리를 구해 오기도 한다” “청와대에서 김치를 담글 땐 영부인도 참여를 한다” 등 청와대의 소소한 음식 이야기들이 특히 재밌었다. 방송이 나가고 2주 뒤인 지난 9월 19일, 한상훈 셰프가 ‘조용히’ 운영 중이라는 신사동 레스토랑에서 그를 만났다. 성인 여성의 두어 배쯤 되어 보이는 큼지막한 손과 호방한 웃음이 인상적이었다.



▼ 방송에 출연한 소감이 어떤가요.

여기저기서 전화가 많이 와요. 평생 월급쟁이 조리사로 살다가 이런 관심을 받으니 마치 직업이 바뀐 듯한 기분이 드네요. 원래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걸 좋아하고 뭐든 빨리 적응하는 편이라 그런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냉부해〉 땐 조리대나 환경이 익숙하지 않았는데 15분 만에 요리를 만드느라 진땀깨나 흘렸어요. 처음 청와대에 취직하려 할 때 많은 이들 앞에서 시연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 대학에선 성악을 전공했다면서요. ‘노래하는 셰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의 꿈은 록 밴드의 보컬리스트가 되는 거였어요. 강원도 양양이 고향인데 친한 친구들과 그룹사운드를 하면서 들판에 나가 샤우팅을 하는 게 하루 일과였죠. 워낙 울림통이 크다 보니 수업 시간에 조금만 떠들어도 교실이 울리는 거예요. 하루는 선생님께서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하기에 ‘아차’ 싶었는데 성악을 해보라고 권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성악 공부를 시작해서 도 대회에서 1등을 휩쓸며 성악가의 꿈을 키웠어요. 나중에 요리사로 전업을 하면서 성악은 특기로 남게 됐죠. 호텔 주방장으로 있을 때 이벤트성으로 손님들 앞에서 가끔 노래를 부른 적도 있어요.

▼ 요리사로 전업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대학에 가서 본격적으로 성악가의 길을 준비해보니 실력이 쟁쟁한 친구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내가 우물 안 개구리구나, 난 이제 뭐 먹고 살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진로를 놓고 한창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눈이 펑펑 오는 어느 날 군 장성급 인사들이 당시 산장을 하던 저희 집에 오신 거예요. 집채만 한 멧돼지를 내려놓고는 “이걸로 요리를 좀 해달라”고 하셨죠. 아무도 멧돼지를 손질해본 적이 없어 원래부터 알고 지내던 근처 호텔 총주방장을 급히 모셨죠. 멧돼지를 두고 발골을 하는데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라봤어요. 그러고 나서 총주방장을 붙들고 “어떻게 하면 요리사가 될 수 있나요?” 하고 물었죠. 그 길로 한국관광공사 경주호텔학교(지금은 사라졌지만 현재까지도 많은 호텔의 대장급 주방장이 이곳 출신이다)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 직접 해보니 천직이던가요.

대학에서 총학생회장을 맡을 정도로 열심이었죠. 그때만 해도 국내에 호텔조리학과가 몇 군데 되지 않아 곧바로 특급 호텔에 취직할 수 있었어요. 졸업 후에는 웨스틴 조선호텔의 베이커리 사업부에 들어가게 됐어요. 처음엔 재밌을 거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대학에서 양식을 전공하며 즐겁게 배웠던 제게 제과 제빵은 심심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결국 2년을 못 채우고 그만두고 인터컨티넨탈호텔 양식당에 들어갔어요. 거기선 10년 넘게 일을 했죠.


▼ 청와대에는 어떻게 들어갔나요.

모험을 즐기던 제가 한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또 좀이 쑤시더라고요.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호텔 총주방장이 제게 “재밌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가서 일해볼래요?” 하고 제안하셨어요.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저는 “해보겠습니다”하고 단박에 오케이를 했죠. 총주방장이 말했던 ‘재밌는 일’이 청와대 조리팀장 자리인 줄은 나중에야 알았어요. 가보니 저 말고도 다른 특급 호텔에서 추천을 받은 셰프들이 몇몇 더 있었어요. 면접을 본 후 직접 시연을 하고, 신원 조회를 마치고 나서야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었죠. 2008년 1월에 제의를 받고 5월 말에야 발령을 받았으니 꼬박 5개월이 걸린 셈이에요.

▼ 시연 땐 어떤 요리를 내놓으셨나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폴렌타(이탈리아 옥수수죽)와 농어 요리, 토마토 살사 소스를 곁들인 서로인 스테이크, 판나 코타(이탈리아 푸딩) 등의 요리를 내놓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어떤 메뉴를 구성할까 머리를 싸매고 몇날 며칠 고민했죠.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침 8시부터 내내 식재료를 준비해서 면접관 15명을 위한 코스 요리를 점심 때 내놓아야 했어요.

▼ 청와대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기쁘셨겠어요.


엄청 흥분했죠. 사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로 유배를 왔을 때, 어머니가 하시던 식당 문을 닫고 두세 달 정도 밥을 해드린 적이 있었어요. 그걸 평생 자랑처럼 여기던 분이셨어요. 나중에는 제가 “어머니는 고작 두 달이었지만, 나는 2대째 짓고 있다”며 자랑했어요(웃음).

▼ 청와대 생활은 어땠나요.

청와대 조리팀은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네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저는 그중에서 양식 파트를 담당했어요. 청와대 조리팀의 역할은 대통령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말이랄 게 따로 없었어요. 물론 미리 짜놓은 식단에 따라 파트별로 돌아가면서 쉬긴 했지만요(웃음). 보통 식사는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검식관의 식사를 함께 준비해요. 박근혜 대통령 때는 2인 요리를 준비했죠. 해외 순방 일정이 잡히면 일정에 맞춰 미리 식재료들을 진공 포장해 준비하고 담당 조리장이 돌아가면서 VIP와 동행했어요.

▼ 보통 대통령이 바뀌면 수행 · 의전 직원들도 대거 바뀐다고 들었어요. 대통령을 두 분이나 모실 수 있었던 비결이 있나요.

저는 변화를 즐기는 것만큼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타입이기도 해요. 요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간혹 ‘자신이 생각할 때 맛있는 요리가 최고의 요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죠. 그런데 전 고객의 입맛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요리를 내는 것이 셰프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정치 상황이 안 좋아져서 대통령의 고민이 깊을 땐, 평소보다 간을 약간 더 세게 해서 입맛을 돋워드리려고 했던 것도 그런 노력 중 하나겠지요. 물론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만요(웃음). VIP가 바뀌었을 때 저 역시 그분의 입맛을 파악하기 위해 수개월간 고민을 했어요. 본가에서 어떻게 식사를 하셨는지 그분의 입맛을 잘 아는 분들로부터 귀띔을 받기도 했고요. 임기 초반에는 메뉴를 다양하게 구성해서 내고, 그중에서 잘 드시는 것들을 데이터로 뽑아 약간씩 변형해가면서 적응해나갔죠.

▼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입맛에 차이가 있다면 어떤 점인가요.

이 전 대통령은 일관된 스타일을 좋아하셨어요. 아침엔 프렌치 어니언 수프를 자주 드셨고, 메인 메뉴로는 불고기에 양식을 접목해 만든 스테이크를 좋아하셨죠. 박근혜 대통령은 주로 채식 위주의 식단을 선호하셔서 제철에 난 채소들로 찬을 지어드리곤 했죠.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간간한 요리를 좋아하셨다면, 박 대통령은 저염식의 건강식을 선호하셨어요.

▼ 청와대에서의 경험이 요리사로서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됐나요.

대통령을 모셨다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겠지만, 제게는 양식만 해오던 기존의 스타일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봐요. 다른 파트 분들과 함께 메뉴를 고민하면서 음식을 보는 시각 자체가 넓어질 수 있었죠. 호텔에서만 커리어를 쌓아왔다면 계속 양식만 고집했을 거고, 김장을 해볼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요. 흔히 ‘양식’이라고 하면 무조건 ‘코스 요리’만을 떠올리실 수도 있지만, 저는 아랍의 ‘메제(소량으로 골고루 담아내는 음식)’나 스페인의 ‘타파스’에서 영감을 받은 전채 요리를 한정식의 반찬처럼 내는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였어요. 요리사로서의 제 새로운 시도를 청와대에서도 반겨주시더라고요.

▼ 꼬박 8년간 청와대 생활을 한 셈인데, 그만둔 이유는 뭔가요.

청와대 조리팀이라고 해서 화려할 것 같지만, 사실 특급 호텔 주방장을 할 때보다 봉급이 많진 않았어요. 밖에 있으면 다른 아르바이트도 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청와대 안에선 오직 대통령만을 위한 음식을 준비해야 했죠. 언젠가는 이 일도 그만두게 될 텐데, 그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명박 대통령을 모실 때 석사를, 박근혜 대통령을 모시면서 박사 학위를 따며 천천히 준비를 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함께 레스토랑 사업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아 그곳을 나오게 됐죠. 청와대 생활을 청산하고 8년 만에 밖으로 나와 보니 집값이 어마어마하게 올라서 힘들었어요(웃음).

▼ 레스토랑 준비는 잘되어가나요.


아, 사실 현재도 영업 중이에요(웃음). 알음알음 알게 된 지인들만 예약을 통해 이용하는 상태죠. 메뉴판이나 가격표도 없어요. 테이블도 딱 두 개뿐이고요. 손님 취향에 맞게 그날그날 좋은 식재료를 구해서 제 전문 분야인 지중해 정통 음식을 내는 식이에요.

▼ 매스컴 진출로 유명세를 탔어요. 앞으로 원하는 바가 있나요.

저는 요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프로답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조리복을 입고 가게 앞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는 주방장을 보면 제가 다 화가 나요. 그런 분들 때문에 요리사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처음 방송 제의가 들어왔을 때 스스로 다짐한 게 있어요. ‘요리사의 본보기가 되어보자’였죠. ‘쿡방’ 덕분에 최근 들어 셰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만큼 앞으로 요리사가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직업이 됐으면 좋겠어요.

사진 홍태식
메이크업 송선화(끌림 갤러리점)
디자인 박경옥
editor 정희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