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고가도로 어제와 오늘, '시민 산책로'로 탈바꿈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09-28 13: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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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고가도로의 어제와 오늘 

1970년 서울의 심장 뚫은 ‘사건’90년대 “도시 미관 훼손”애물단지 

철거 대신 도심 공원 탈바꿈 진행 
1970년 서울역 고가 도로. 사진=e영상역사관
서울의 심장을 고속이 뚫었다.
1970년 8월 15일 동아일보는 서울역고가도로와 남산 1호 터널 개통을 보도하며 이 같은 제목을 달았습니다. 실제로 이 제목처럼 서울 도심에서 한강 이남으로 향하는 ‘장애물’이었던 서울역과 남산이 이날 '뚫렸습니다'. 흉물이라는 비난을 받다가 마침내 보행로로 전환하기로 결정된 지금 서울역고가의 상황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듭니다.‌‌개통 후 서울역고가는 사회·경제적으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함의를 지니는 상징물이 됐다고 합니다. 우선 다른 고가도로들처럼 폭증한 차량 통행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했고요. 이와 함께 서울역 철로로 인해 단절된 도심 및 남대문시장 일대와 서울역 서쪽 일대를 잇는 연결로라는 독보적 지위도 가졌습니다. 만리동과 청파동 일대의 소규모 봉제공장과 남대문·동대문 시장을 잇는 ‘산업적 역할’을 톡톡히 했던 것입니다.

사진=e영상역사관
문화적으로는 '서울의 근대화'를 알리는 상징물로 기능. 서울의 새 명물.
‌문화적으로는 '서울의 근대화'를 알리는 상징물로 기능하기도 했습니다. 완공 당시 신문들은 ‘서울의 새 명물’ ‘서울의 심장을 꿰뚫어’ 같은 뜨거운 찬사를 보낸 것이 그 예인데요. 별다른 시설물이 없던 서울역 일대에서 서울역고가는 두드러진 ‘인공미’를 뽐냈습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도심의 민주화운동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한 장소이기도 했고요.



사진=동아db
사진=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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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 서울역고가의 위상은 조금씩 낮아졌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안전인데요. 동아일보가 입수한 ‘서울역 7017 프로젝트 기초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가 1984년 점검 결과 서울역고가의 상판 콘크리트와 2개 교각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보고서는 이 시기를 “서울의 근대화 시설물이 더이상 도시문제의 해결책이 아닌 문제 자체가 되어가는 전환기”라고 분석했습니다.


2012년 안전점검에서는 사용 제한이 필요한 ‘D등급’을 받아
사진=동아db
사진=동아db
1995년에는 처음으로 철거 논의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안전 문제와 함께 ‘서울역고가가 차량 유입을 늘려 오히려 정체를 더 빚게 만든다’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도 잇따랐는데요. 당시 최병렬 서울시장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한 ‘서울상징가로 및 국가중심가로 조성방안’에는 서울역고가의 철거와 철도 노선 용지 복개 등이 포함됐습니다. 이명박 시장과 오세훈 시장도 각각 서울역고가 철거를 검토하거나 발표했고요. 2012년 안전점검에서는 사용 제한이 필요한 ‘D등급’을 받았습니다.

1970년 서울역 고가(위), 2016 서울역 고가 수목원 조성 당선 조감도. 사진=e영상역사관(위), 서울시(아래)
‌박원순 시장이 제안해 시작된 ‘서울역 7017 프로젝트’는 기존에 논의된 철거 대신 보행로 및 공원으로서의 기능 전환을 택한 방식입니다. 차량이 아닌 보행자가 서울역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보행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을 부여한 셈입니다. ‌ ‌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 ‌ ‌★그리고...VODA의 추천영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