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신부님’ 평생 가난한 삶 실천하고 가신 조비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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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2016-09-21 1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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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비오 신부/동아일보DB
21일 새벽 조비오 신부의 선종(善終)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천주고에서 선종은 돌아가실 때 성사를 받아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을 말합니다.

‌민주화의 산증인인 조 신부님의 죽음에 정치권이 여아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애도를 표했습니다. 



‌새누리당은 21일 논평을 통해 “조비오 신부는 5·18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으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왔고 소외된 사람, 어려운 시민과 함께하면서 통일과 민족화합에도 노력했다”면서 “그분의 뜻이 좋은 결실을 보이도록 정치권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애도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도 성명을 내고 “민주성지 광주의 큰 별이 진 것을 시민과 더불어 깊이 애도한다”면서 “더민주는 신부께서 못다 이룬 민주와 평화와 통일의 뜻을 이루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민의당 광주시당은 논평에서 “150만 광주시민과 함께 애도의 뜻을 전하면서 헌신의 길을 뒤따를 것을 다짐한다”면서 “최근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내 5·18 사적 원상복원 문제도 조속히 해결하다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조비오 신부는 이날 오전 3시20경 췌장암으로 선종했습니다. 향년 78세. 빈소는 광주 임동성당 지하강당에 마련됐고, 오는 23일 전남 담양군 천주교공원묘원에 안장될 예정입니다. 장의위원회는 고인의 뜻에 따라 조화 대신 쌀을 받아 농민과 생활이 어려운 시민을 돕는 데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유신에서 5ㆍ18광주민중항쟁까지 민주화운동의 증인이자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원로인 조비오 신부는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전남 나주, 진도, 광주 계림동 등 성 성당 주임신부로 사목 활동을 했습니다.

조비오 신부님은 서슬 퍼렇던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수습위원으로 사회 부조리에 맞섰습니다. 당시 게엄군에 맞서 총을 든 젊은이들을 찾아가 평화 시위를 촉구하며 총기 회수에 나선 조 신부님은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의 핵심 동조자로 몰려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2006년 8월 38년간의 사목 생활을 마친 뒤에도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이사장, 광주·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를 맡으며 민족화합, 사회복지운동에 주력했습니다. 2008년 1월16일에는 고위 성직자 품위이자 교황의 명예 사제인 '몬시뇰'에 임명됐습니다. 

‌선종하기 까지 조비오 신부님은 청빈한 삶을 살았습니다. ‌교구청에서 제공하는 사제관을 거부하고 소화자매원 인근 아파트에서 홀로 살며 어려운 이웃을 도왔습니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남에게 남김없이 베풀어 항상 잔고는 텅텅 비었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 기력이 떨어지며 쓰러지기도 자주 쓰러졌던 조비오 신부님. 그는 병원에 누워 있을 시간이 없다며 입원도 마다 않고 소화자매원에서 사회복지사업을 펼쳤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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