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 일본 반응‥눈물 흘리는 일본 직장인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09-05 09: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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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TV, 7월부터 ‘리메이크’ 방영
“日에선 보기힘든 동료애 잘 그려… 기존 한국드라마와는 전혀 달라”
취업난 없는 日현실에 맞춰 각색
단행본으로도 출간… 팬클럽 등장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일본 도쿄(東京) 오다이바 후지연안스튜디오. 완벽한 상사(商社) 사무실로 꾸며진 드라마 ‘HOPE∼ 기대 제로의 신입사원’ 세트장에서 아이돌 출신의 주연 배우 나카지마 유토(中島裕翔)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전해 듣고 기뻐하는 장면의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한국 드라마 ‘미생’을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7월 중순부터 황금시간대인 일요일 오후 9시 후지TV에서 방영 중이다. 시청률은 6∼7%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제작 책임자 와타나베 고야(渡邊恒也) PD는 “해당 시간대에 드라마를 편성한 지 얼마 안 된 점과 리우 올림픽 등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조건”이라며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평 일색”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인터넷의 드라마 만족도 평가에서는 경쟁 작품을 앞지르고 있다.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미생이 일본 열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임시완이 주인공 장그래로 나오는 원작 드라마는 위성 등에서 재방송이 거듭되고 있다. 웹툰은 6월 일본 최대 출판사인 고단샤에서 단행본이 출간됐다. 일본판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신입사원이 된 아들 모습이 떠올라 매번 눈물이 난다”는 등의 감상평을 남기고 있다.






와타나베 PD는 “한국인 스태프의 추천으로 드라마를 봤는데 사실적이면서도 신선한 스토리가 기존 한국 드라마와 전혀 다르면서도 재미있었다. 바로 판권 확보에 나서 지난해 말 리메이크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일본판 미생은 분량만 3분의 1로 줄이고 원작의 설정과 등장인물을 그대로 가져왔다. 와타나베 PD는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팀의 기획 아이디어를 전무에게 뺏기고 만취한 오 과장이 “당신들이 술맛을 아느냐”고 중얼거리는 대목을 꼽았다. 그는 “힘든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싸우는 모습이어서 일본판에도 그대로 넣었다”고 전했다.

원작과 달라진 부분도 있다. 취업난이 한국처럼 심각하지 않다 보니 일본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취직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이 때문에 ‘원작에 비해 절실함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와타나베 PD는 “일본판의 주인공은 반드시 취직을 해야 한다기보다 바둑 프로기사 목표를 가졌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라며 “이것이 지금 일본 젊은이들의 현실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마니아 팬도 생겨났다. 지난달 4일 고서점가인 도쿄의 간다진보(神田神保) 정 한국 서적 전문 북카페 ‘책거리’에서는 미생의 일본 팬들이 모임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출생의 비밀, 기억 상실 등 한국 드라마의 상투적 소재가 나오지 않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본 상사에서 35년째 일한다는 중년 남성은 “지금 일본 회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동료 간 우애 등이 잘 그려져 있다. 일부 장면은 신입사원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생으로 한류 저변이 확장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출판계에 따르면 한국 웹툰이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처음이다. 웹툰을 번역한 후루카와 아야코(古川綾子) 씨는 “일본과 한국이 공유하는 바둑이라는 소재로 직장 생활을 풀어낸 것이 줄거리에 깊이를 더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서적 전문출판사 쿠온의 김승복 대표는 “드라마 위주였던 한류가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라며 “앞으로 웹툰, 학습만화, 그림책 등을 적극적으로 일본에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