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하고도 가슴아픈 우리나라의 민낯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09-01 14: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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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야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 늦은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과 직장이 멀지 않아 굳이 나올 필요를 못 느꼈다. 덕분에 서른 살 먹도록 부동산이라든가 계약, 대출 같은 일에는 문외한이었다. 이번에 신접살림을 꾸밀 집을 구하러 다니는 동안 대한민국의 ‘민낯’을 맞닥뜨려야 했다.

‌먼저 전셋집을 알아봤다. 서울 평균 전세금이 3억 원을 훌쩍 넘겼다는 통계가 있었는데, 실제 다녀보니 실로 놀라웠다. 1억, 2억 원은 우스웠다. 그렇다고 보증금이 저렴한 월세를 구하자니 매달 나가야 하는 비용이 상당했다. 월급도 얼마 되지 않는데 이 돈이 매달 나간다고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서울 밖으로 나가자니 출퇴근이 너무 길어져 한 사람은 직장을 포기해야 할 판이었다.

이런 쪽에 해박한 친구에게 도움을 구했다.

“대출받으면 돼. 요즘 이자가 얼마나 싼데. 1억 빌려도 얼마 안 나와. 월세보다 훨씬 낫다니까.”
은행에 가보았다. “빚도 자산이죠. 요즘 주담대(주택담보대출)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저금리가 기회라며 권한다. 은행 다니는 친한 누나는 “우리 또래에 자기 돈으로 집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다 부모가 해주는 거지. 그런 금수저가 아니면 대출받아야지”라고 말했다. 내 월급으로 수십 년을 갚아야 하는 돈임에도 대출이 척척 나온다고 한다. 실제 대출이 주거비용으로 가장 저렴하다. 그렇게 빚을 권하는 사회다.

공인중개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꼭대기 층의 좋은 집인데 전세로 나왔어요. 전세 귀한 거 아시죠? 오늘내일 나갈 수 있어요. 일단 보고 바로 가계약금 걸어요.” 목 좋은 곳에 전망 좋고, 새로 지어 깔끔한 오피스텔이 이자도 몇 푼 안 될 텐데, 왜 월세가 아니라 전세로 나왔는지 궁금했다. “왜 전세로 나왔겠어요? 돈이 없으니까 나왔지. 여기 주인은 계약금도 대출로 넣고, 중도금도 무이자로 집단대출을 받았어요. 잔금은 고객님 들어오실 때 받은 전세금으로 내면 되니까요.” 그야말로 빚으로 쌓아 올린 집이다. 나도 이 집에 들어가려면 수억 원을 빚져야 하는데, 주인도 이 집 마련하려고 이미 수억 원 빚을 졌다. 빚쟁이가 빚쟁이 집에 들어가 사는 꼴이다. 도대체 누가 이 집 주인인 걸까.



얼마 전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가 오피스텔 123채를 가지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그때 내 또래 친구들이 모인 ‘카톡방’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거 봐, 부동산 계속 간다니까. 고위층에서 이렇게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데 쉽게 무너뜨리겠어? 어떻게든 계속 띄울 거야.” “우리도 각자 빚내서 돈 모아 오피스텔 사자. 젊을 때 조물주 위에 건물주 한번 해봐야지.”

빚 권하는 사회, 빚으로 쌓아 올린 집, 부동산 불패 신화, 우리 정권에서만 터지지 않으면 된다며 폭탄 돌리는 정부, 이런 부동산에 대한민국의 민낯이 있었다.
우리 세대에게 집값은 한없이 치솟은 성벽처럼 공고하다. 특히 부모님의 도움 없이 맨손으로 시작해야 하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빚으로 점철되는 사회생활 시작은 너무나 가혹한 짐이다. “대출받으면 돼”라는 말조차 너무 아프다. 얼마 전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하려면 한 푼도 안 쓰고 숨만 쉬며 모아도 13년이 걸린다는 통계가 있었다. 1996년 같은 통계에서는 6년이었다고 한다. 20년이 지나도록 월급은 찔끔 오르고 집값만 내리 오른 것이다.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무렵 30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는 시대를 맞게 된다. 그렇다고 부동산 버블이 터져도 문제다. 외환위기 때처럼 수많은 가정이 붕괴되면 가장 고통받는 것도 결국 아이들이다. 부모님 세대의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불안해진 노후를 우리 세대가 빚을 내가며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은 우리의 부동산을 떠받치기 위해 얼마나 더 가혹한 방식으로 살게 될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서둘러 이 탐욕의 고리를 끊어야 하지 않을까.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옹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