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엘니도’ 바다색이 에메랄드빛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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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사이언스2016-08-29 15: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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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엘니도에 있는 '빅 라군'의 모습. 유난히 맑은 바다의 색이 긴 여정의 피로를 씻어준다. - 엘니도=권예슬 기자 yskwon@donga.com
기지개를 크게 펴며 긴 시간 구겨졌던 몸을 폈다. 고개를 들고 보니 에메랄드빛 바다가 자태를 뽑내고 있었다. 여행의 종착지인 ‘엘니도’에 도착한 것이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쪽 섬 팔라완으로. 팔라완 공항에서 북쪽으로 에어컨도 없는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6시간 달려야 엘니도에 다다랐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은 눈이 시릴 듯 빛나는 청록색 바다. 엘니도는 우리나라에서 본 것과 전혀 다른 짙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뽐내고 있었다.

●주변 환경과 해양 생물이 바다색 결정

흔히 ‘푸른 바다’라고 하지만 바다를 구성하는 물은 그저 투명할 뿐이다. 우리 눈에 바다가 푸르게 보이는 까닭은 여러 색의 빛이 혼합된 태양빛 중 푸른색 파장의 빛만 바다에 흡수돼 바닷속에서 산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바다가 무조건 파란 것도 아니다. 바닷속 침전물의 종류, 태양 빛의 각도, 물속에 서식하는 생물의 종류에 따라 바다색은 팔색조처럼 바뀐다.

유럽 남동쪽 ‘흑해’는 물 속 깊은 곳에 죽은 대량의 박테리아가 내뿜는 검은색 황화수소 때문에 검게 보이고, 중국의 황토가 유입되는 서해는 황토성분 때문에 바닷물이 누렇게 흐려 있다. 지나치게 깨끗해 바닷속 해조류가 그대로 비치는 덕분에 붉게 보이는 홍해도 있다.

보통 넓은 대양은 짙은 파란색을 띠고, 연안 바다는 녹색이나 노란색 등 다양한 색을 띤다.

엘니도를 비롯해 동남아 인근 지역 바다가 에메랄드빛, 즉 녹색을 띠는 이유는 ‘클로로필’이 큰 역할을 한다. 식물성 플랑크톤에 들어있는 클로로필은 작은 단세포 유기체의 녹색 색소로, 광합성을 통해 햇빛을 해양 생물의 먹이로 바꿔준다.






NASA가 촬영한 바다 이미지. 연안의 바다는 녹색 빛을 대양은 짙은 파란색을 띤다. -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바다색 옅어지면 태풍발생 줄어

과학계는 바다색을 결정하는 이 클로로필을 이용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바다색을 보면 태풍의 경로도 어느정도 예측할 수 있다. 2010년 아난다 그나나데시캔 미국 해양대기청(NOAA) 연구원 팀은 바다가 녹색을 잃으면 태풍 발생 빈도가 70%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를 학술지 ‘지구물리학연구(Geophysic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클로로필을 갖고 있는 플랑크톤의 양이 지난 1세기 동안 서서히 감소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보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현재 북태평양 연안의 실제 클로로필 분포도와 클로로필 농도가 0일 때의 시나리오를 비교한 것이다.

그 결과 북태평양 지역에서 시계방향으로 바다가 순환하는 아열대 환류 지역에서 클로로필 농도가 감소하며 바다가 녹색 빛을 잃어버리자 허리케인 발생 빈도가 70%나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그나나데시캔 연구원은 “클로로필이 없어지면 햇빛이 바다 깊은 곳까지 침투한다”며 “이로 인해 공기의 흐름이 바뀌어 건조한 공기가 상승하는 과정에서 허리케인이 잘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바다 속 산호는 주변 조류가 함께해야 화려한 빛깔을 뽐낸다. - Pixabay 제공
●아름다운 바다 지키려면 태풍은 필수조건

‌바다색을 결정하는데 빠져선 안 될 ‘산호’도 태풍과 관계가 깊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데릭 만젤로 NOAA 연구원 팀은 허리케인이 발생해야 산호가 아름다운 색을 유지한다는 연구결과를 2007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산호의 아름다운 색은 해조류로 인해 나타난다. 수온이 올라가거나 물이 더러워지면 산호는 스트레스를 받아 공생하는 해조류를 쫓아내는데, 해조류가 떠난 산호는 회색이나 흰색으로 변해버리는 ‘백화’현상이 일어난다. 연구진은 이런 백화현상은 태풍이 지나간 후 다시 회복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만젤로 연구원은 “태풍이 수온을 낮춰 산호가 조류와 다시 공생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지나치게 거대하면 산호 자체를 부숴버릴 수 있으므로 산호에게 있어서 태풍은 양날의 칼인 셈”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