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지만...김연경의 ‘월드클래스 품격’ 멋져요

동아일보
동아일보2016-08-18 17: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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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배구팀에 ‘엄지 척’ 축하… 동료들 위로해주고 “고맙다” 
김연경(28)은 의연했다.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누구보다 간절히 승리를 원했던 그는 동료들부터 먼저 챙겼다. 그리고 승자인 네덜란드 선수들에게 축하의 악수를 건넸다. 16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지뉴 경기장에서 열린 리우 올림픽 여자 배구 네덜란드와의 8강전. 김연경은 이날 양 팀을 통틀어 가장 많은 27득점을 올리며 고군분투했지만 한국의 1-3 패배를 막지 못했다. 그렇게 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그의 꿈은 40년 만의 여자 배구 올림픽 메달 꿈과 함께 사라졌다. 김연경이 없었다면 코트는 울음바다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김연경이 중심을 잡은 한국 선수들은 다 같이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

김연경 선수가 10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나징유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 올림픽 여자배구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서브를 위해 공을 넘겨받고 있다./2016.08.10/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팬들 인증샷까지 응해준 뒤 라커룸서 펑펑
“죄송하다”, “미안하다”.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에게서 자주 들었던 이 말을 김연경은 이날 경기가 끝난 뒤 딱 한 번만 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에게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했다고 말할 때뿐이었다. 그는 “이번에 진짜 많은 관심을 받아서 좋은 결과로 보답했어야 했는데 거기에 못 미쳐서 죄송하게 생각한다. 보내주신 응원에 감사드린다. 한국 여자 배구에 더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미안함보다는 고마움과 아쉬움을 이야기한 김연경은 틀에 박힌 답변보다는 자기 생각을 솔직히 표현했다. 이번 대회 자신이 맡았던 주장 역할에 대해 “솔직히 힘들었다”고 했다. “한 경기를 잘하면 갓연경(신+김연경)이 되고 한 경기를 못하면 한순간에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가 되는 등 경기 때마다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서 힘들었다”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 놓기도 했다. 후배 선수들에 대해서는 “안정적인 면이 떨어졌다. 국내 프로리그에선 통하지만 대표팀에서는 안 통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냉정하게 평가했다. 한국 여자 배구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떳떳이 밝혔다. 그는 “결국 해외에서 뛴 경험을 토대로 큰 대회에 나와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선수들이 기회가 되면 (해외로)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연경(오른쪽)이 16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배구 8강전에서 네덜란드에 패한 뒤 김해란을 안고 아쉬워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믹스트존을 빠져나가다 네덜란드 선수단을 발견한 김연경은 안면이 있는 네덜란드 코치의 어깨를 먼저 툭 친 뒤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다시 한번 축하 인사를 전했다. 자원봉사자와 경기 스태프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도 친절히 응했다. 패배의 안타까움 속에서도 김연경은 올림픽 자체를 만끽하는 월드 스타의 ‘품격’을 드러냈다.

김연경의 리더십은 대회 내내 코트 안팎에서도 빛났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인 그는 소속 구단(터키 페네르바흐체)의 경기 일정이 끝나자마자 귀국해 대표팀에 합류했다. 연일 강행군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그는 “어차피 해야 할 건데 뭐”라는 말로 피곤한 기색을 감췄다. 때로 투덜거리는 동료들에게는 “여기서 안 아픈 선수가 어디 있냐”며 분위기를 다잡곤 했다.

끝까지 의연했던 그가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 것은 라커룸에 들어가서였다. 김연경은 “평소에는 잘 울지 않는다. 그런데 올림픽만 오면 울게 된다. 정말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것이다”라고 했다.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을 끝낸 김연경은 그렇게 한국 여자 배구의 다음 도전을 기약했다.

‌리우데자네이루=이헌재 un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강홍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