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눈먼 은행… 위험 1등급 DLF “원금손실률 0%”라며 팔아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10-02 09: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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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10월 1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은행의 손해배상 및 정부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은행들이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가 발생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를 팔면서 5건 중 1건은 손실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등 불완전판매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상품 판매를 경고하는 내부 의견을 묵살하기 위해 자체 심의기록을 조작한 사실도 확인됐다.

금융감독원은 10월 1일 DLF를 판매해 온 은행 등 금융사들에 대한 현장검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검사는 우리·KEB하나은행을 비롯해 해당 상품을 발행, 운용한 3개 증권사와 5개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한 달 넘게 이뤄졌다.




○ 내부 문제 제기 묵살, 심의서류도 조작


4월 직장인 A 씨는 평소 거래하던 은행 직원으로부터 “안전하고 조건이 좋은 상품이 나왔으니 빨리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며 DLF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를 받았다. 펀드로 손실을 본 경험이 있는 A 씨는 그동안 은행에 “높은 이자는 필요 없고 원금이 보전되는 예·적금을 추천해 달라”고 말해왔다. 이 때문에 해당 직원이 안전한 상품을 권유하는 것으로 믿고 가입했다. 통화시간은 불과 ‘1분’이었다. 직원은 A 씨 직장을 5분가량 방문해 거래신청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A 씨가 가입한 상품은 예금이 아닌 위험등급 1등급인 DLF였다. 은행 직원은 신청서에서 A 씨 투자성향을 ‘공격투자형’으로 둔갑시켰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들은 독일 국채금리가 하락해 손실 규모가 커지는 상황인데도 투자자에게 위험을 경고하기는커녕 오히려 상품 구조까지 바꿔가며 DLF를 지속적으로 판매했다. 원금 손실 위험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세계 최고의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금리에 투자하라’라는 광고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발송했고, 투자자 성향 설문을 하지 않고 직원이 임의로 입력하는 등 불완전판매도 일삼았다.


은행들은 상품 판매를 위해 내부 반대 의견을 묵살하거나 서류를 조작하는 행태까지 보였다. 은행들은 내규상 고위험상품을 출시할 때 내부 상품(선정)위원회의 심의·승인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우리은행은 2017년 5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설정한 DLF 380건 중 2건만 상품선정위원회를 거치고 나머지는 기초자산이 동일하다는 이유로 생략했다. 또 상품 출시 여부를 심의하는 내부 상품선정위원회 위원 중 일부가 상품 출시에 문제를 제기하자 찬성 의견을 임의로 적어 넣었다. 반대 의견을 표명한 위원을 다른 직원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우리·하나은행 PB센터의 비이자수익 평가 비중이 다른 은행보다 월등히 높아 PB들이 DLF 판매에 더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은행은 ‘만기상환확률 100%, 원금손실률 0%’ 등의 내용을 담은 자료를 사내게시판에 걸었고, “손실 확률이 극히 적다”라는 점을 강조해 DLF를 판매한 지점을 우수사례로 소개했다.


○ 고객은 대량 손실, 은행은 거액 수수료


우리·하나은행이 판매한 DLF 투자자의 절반가량은 60대 이상 고령자다. 개인투자자 중 60대 이상 투자자 비율은 48.4%(1462명, 3464억 원), 70대 이상은 21.3%(643명, 1747억 원)였고, 90대 초고령자도 8명이 14억 원을 투자했다. 유사 상품 투자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투자액은 전체의 21.8%였다. 금감원은 우리은행(2006건)과 하나은행(1948건)의 판매서류를 전수 점검한 결과 불완전판매 의심 사례가 전체의 20% 내외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들은 자체 수수료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DLF 상품의 제작부터 판매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만기·수익률 등의 조건을 은행이 정한 뒤 증권사에 파생결합증권(DLS) 발행을 요청하면 증권사가 해당 상품을 주문 생산했다는 것이다. DLF를 통해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약정수익률 2.02%(6개월 기준)보다 높은 4.93%가량을 수수료로 챙겼다.


은행들이 조직적으로 DLF 판매를 독려하고 내부통제에 소홀했던 것이 확인됨에 따라 경영진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금감원은 우리·하나은행에 대한 추가 검사를 실시해 제재 절차에 들어갈 방침이다. 분쟁조정 신청 건에 대해서는 조속히 배상 비율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날 지성규 하나은행장은 입장문을 내고 “손님들께 고통과 심려를 끼쳐 드린 점을 깊이 사과드린다. 분쟁 조정 절차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장윤정 yunjung@donga.com·김자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