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디즈니 악보집 펴낸 남자 “출판계 이단아? 재밌는걸 하는거죠”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9-29 13: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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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영 사장은 “대중음악, 크리에이터, 악기회사, 미디어 등과의 컬래버레이션(협업)에 관심이 많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성과까지 따라오면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8일 오전 경기 파주시 문발로의 음악 전문 출판사 삼호뮤직. 한 남자가 오토바이에서 내리며 헬멧을 벗자 장발이 휘날렸다. 김두영 삼호뮤직 사장(42)이다. 보수적인 음악 전문 출판계에서 삼호뮤직은 최근 유튜브, 디즈니, 마블, 게임 등을 출판에 접목하며 새바람을 일으켰다. 그 중심에 2세 경영인인 김 사장이 있다.

“이 책 기억나세요? 뮤지션의 정보를 추가로 담고 가사에 한국어 독음을 달아서 히트를 쳤죠.”



김 사장이 ‘특집 팝송 비바’라 적힌 손바닥만 한 책을 건네며 말했다. 책을 펼치자 누렇게 곰삭은 페이지가 뚝 떨어져 나갔다. 삼호뮤직은 1977년 김 사장의 부친인 김정태 회장이 창업했다. 대중음악으로 시작해 1990년대에 음악 교재 분야에 후발 주자로 뛰어들었다.

“집에는 늘 악보와 팝송 백과가 넘쳐났어요. 일찍부터 서구와 일본 팝에 눈떴죠. 초등학교 6학년 때 몰래 기타 학원을 다녔습니다.”

김 사장은 30년 차 아마추어 뮤지션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밴드 활동을 했고,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마음 맞는 동료들과 언더그라운드 밴드를 꾸렸다. 포지션은 베이스 기타. 공연도 하고 음반도 냈다. 회사에 대한 책임이 커지고 아이 셋을 둔 아빠가 되면서 뜸해졌지만 지금도 밴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팝스타를 소개한 ‘팝송 비바 시리즈’(왼쪽).1982년 처음 선보인 ‘삼호판 파퓰러피아노 피스 시리즈’.
삼호뮤직에 입사한 건 2004년. 영업 사원으로 시작해 2009년 사장직에 올랐다. 아버지로부터 “나보다 회사를 더 잘 돌봐야 한다”는 말을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은 그는 압박감을 느껴 이리저리 헤매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매출이 두 배 이상 뛰었고 실용음악 브랜드인 삼호ETM을 만들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비결이라면 ‘덕질’ 같아요. 입사 이후에도 좋아하는 해외 밴드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즐겨 봤어요. 유튜브에서 연주와 편곡 실력을 겸비한 뮤지션들을 알게 됐어요. 게시판에 ‘뮤지션을 따라 연습하고 싶은데 악보가 없나요?’라는 요청을 보고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란 걸 직감했습니다.”

유튜브 스타 ‘레이나’ ‘두피아노’ ‘제니 윤’의 악보집을 만들어 페이지마다 QR코드를 덧입혔다. 악보를 펴면 바로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는 “지금은 흔해졌지만 당시엔 새로운 형태의 악보집이었다. 유튜브 음악인들의 부상과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의 인기가 맞물려 대중음악을 담은 악보집 시장이 커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2014년에는 세계 최초로 디즈니 본사와 악보 라이선스 협약을 체결했다. 영화 ‘겨울왕국’에 푹 빠진 첫째 딸의 모습에 디즈니 영화 주제곡을 악보로 펴내면 어떨까 싶었다. 본사 문을 두드렸더니 “화보집과 어린이 책은 많이 펴냈지만 악보 출간 문의는 처음”이라며 반색했다.


결과는 대성공. 캐릭터 피아노 교재인 ‘미키마우스 계이름 공부’ ‘리틀 프린세스 소피아 음악놀이북’ 등으로 교재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2019년에는 마블과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에는 엔씨소프트와 손을 잡고 게임 ‘리니지’ ‘블레이드앤소울’ 등의 OST 피아노 악보집을 펴냈다. 낱장 악보집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부친은 “나는 모르는 영역이다. 네가 다 해라”라며 칭찬 아닌 칭찬을 건넸다고 한다.

“아버지는 길을 알면서도 모른 척 지켜보실 뿐이죠. 몸으로 부딪치느라 실수가 잦고 속도가 느리지만, 그만큼 뿌리가 단단해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연예기획사와 협업하고 새로운 교재를 개발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싶습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