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영령에 ‘무릎 사죄’한 노태우 아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8-27 10: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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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가 8월 23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 윤상원 열사 묘역 앞에서 두 손으로 꽃을 들고 무릎 꿇고 앉아 오월 영령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 제공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55)가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 영령에게 사죄했다. ‘5·18 피고인’으로 처벌받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직계가족 가운데 5·18민주묘지를 찾아 사죄한 사람은 재헌 씨가 유일하다.

8월 26일 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에 따르면 재헌 씨는 8월 23일 오전 11시 광주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를 찾아 1시간가량 참배했다. 그는 이날 오전 9시 헌화할 꽃을 보내면서 전화로 방문 의사를 밝혔고 이후 일행 4명과 함께 5·18민주묘지를 찾았다.



재헌 씨는 묘지 입구인 민주의 문에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참배단으로 이동해 헌화와 분향을 했다. 방명록에는 ‘삼가 옷깃을 여미며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의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이어 5·18항쟁추모탑 뒤 오월 영령 묘역을 찾아 추모했다. 시민군 대변인으로 옛 전남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에 의해 숨진 윤상원 열사와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광주교도소에서 숨진 박관현 열사의 묘역을 참배했다. 윤 열사는 노동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박기순 열사와 1982년 영혼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두 사람의 넋풀이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재헌 씨는 방명록에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썼다. 사진= 국립 5·18민주묘지관리소 제공
재헌 씨는 당시 광주 효덕초등학교 4학년으로 동산에서 놀다가 계엄군이 쏜 총탄에 숨진 유공자 전재수 군의 묘역도 찾았다. 전 군은 영정사진마저 없고 비문엔 ‘고이 잠들어라’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인사가 새겨져 있다. 재헌 씨는 이후 추모관, 유영보관소를 다녀갔으며 추모 과정에서 ‘아버지께 사죄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헌 씨와 동행했던 한 인사는 “노 전 대통령이 평소 5·18민주묘지에서 참배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병세가 악화돼 아들이 대신 온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1997년 대법원에서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았고 16년 만인 2013년 추징금을 완납했다. 재헌 씨의 사죄와 관련해 5·18 관련 단체 관계자는 “특별히 내놓을 만한 입장 표명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