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걸그룹 한번 해볼까” 싱어송라이터 4인이 뭉쳤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8-16 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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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데뷔 싱글 표지 촬영에 임한 DIY 걸그룹 ‘치스비치’ 멤버들. 왼쪽부터 러비, 스텔라장, 치즈, 박문치. 12일 실제로 만나본 이들은 이 사진과 대동소이했다. 치스비치 제공
단군 이래 이런 걸그룹은 없었다. 최근 조용한 돌풍의 주인공, 4인조 ‘치스비치’다.

각자 2∼8년간 솔로로 활동한 인디 여성 싱어송라이터 4명이 뭉친 프로젝트 그룹이다. 치즈, 스텔라장, 러비, 박문치…. 각자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팀명을 지었다.



“데뷔하자마자 업계에서 핑클 다음 연배네요.”(치즈)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에서 8월 12일 만난 치스비치는 DIY(Do It Yourself·스스로 하라) 걸그룹의 효시가 되려 한다. 자작 데뷔곡 ‘SUMMER LOVE…’는 1990년대 걸그룹에 대한 애정으로 뭉친 1990년대생들이 만든 패러디와 헌정의 결정체.

장난처럼 내본 데뷔곡이 발매 며칠 만에 주류 음원차트에 올랐다. 노래만 덜렁 있는 게시물이 입소문만으로 유튜브 조회수 5만 건을 돌파했다. S.E.S.와 핑클을 묘하게 에두른 음반 표지, 90년대 인기가요 모음집에 왠지 한 곡 끼어 있었음 직한 “쓸데없이 높은 퀄리티의” 복고풍 음악이 화제다.


시발점은 5월, 러비가 던진 일견 시답잖아 보이는 제안. “우리 걸그룹 하면 재밌겠다. 어때?” 네 명의 뇌 혈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S.O.S., 핑키퐁키, 캔디걸스, 포니테일…. 팀명 아이디어를 여럿 냈지만 치스비치만 한 게 없었어요.”(박문치)

작사 작곡도 네 명이 함께했다. 기반은 90년대 유행한 ‘뉴 잭 스윙’ 장르. S.E.S., 핑클, 베이비복스, 샤크라, 밀크, 투투, 파파야, 슈가, 러브의 뮤직비디오를 함께 보며 연구했다. 편곡은 지난해 김현철의 ‘오랜만에’ 리메이크 버전을 편곡한 박문치가 주도해 하루 만에 끝냈다.

감쪽같은 패러디에 현 시대의 요소도 넣었다. 가사 중 ‘시린 내 옆구리엔 시리뿐(이야)’에서 시리는 애플의 음성인식 서비스다.

표지 촬영 날에야 데뷔가 실감 났다. 각자 알아서 꾸미고 와 촬영장에서 만난 넷은 서로를 보고 “우리가 사고를 치긴 쳤구나” 생각했다고. 흰색 팔 토시, 흰 방울 머리띠, 흰 모자를 착장한 서로를 보면서…. 스프레이 한 통 다 써서 살린 앞머리 한 올의 디테일, 이 더운 여름에 동대문시장에 가 앙고라 팔 토시를 구해온 노고도 재미가 있어 가능했다.


과연 멤버들 본인의 자본과 기획으로 데뷔한 걸그룹이 있었던가.

“인디 음악가로서 주류 연예계의 안티테제 역할을 훌륭히 소화한 셈이네요.”(스텔라장)

“데뷔 비용은 다른 걸그룹의 10만분의 1쯤? 녹음도 (박)문치네 집에서 ‘홈리코딩’으로 했으니까….”(러비)

이달 말 정식 뮤직비디오를 공개한다. “화면이 너무 밝아 사람 얼굴에서 동공과 콧구멍만 보이는 그 시절 색감”(러비)으로 촬영할 작정이다. 안무도 직접 짰다. 치스비치의 돌풍은 가속 페달을 계속 밟을 수 있을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