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댓글이 너무 깨끗해서 가재도 산다는 ‘댓글 청정구역’ 맞나요?”
한 법조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채널에 올라온 댓글이다. 채널 운영자가 법률 전문가여서인지 악성 댓글을 다는 누리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 유튜브 채널의 주인장은 바로 박일환 전 대법관(68·사법연수원 5기)이다.
평생 법만 알고 살던 그가 유튜브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한 건 2018년 말이다.
박일환 전 대법관/사진=지호영 기자
현재 그는 ‘차산선생법률상식’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차산은 박 전 대법관의 호(號)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법적 분쟁 사례를 소개하고, 이와 관련된 대법원 판례를 예시로 곁들여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슈가 되는 판결 취지를 정확하게 설명해 국민의 오해를 바로잡으려 애쓴다.
영상은 ‘방송 연기자의 권익 보호받을 수 있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비밀 녹음은 정당한가’ ‘강도한 돈으로 갚은 빚’ ‘보이스피싱’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네티즌 사이에서 ‘주제의 핵심만 빠르게 알려주는 방송’으로 소문이 나면서 구독자 수가 빠르게 늘어 현재 2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구독자 중 18~34세 비중이 무려 78%에 달할 정도로 젊은 층의 반응이 특히 좋다.
그의 유튜브 채널 댓글 창에는 “법조인 유튜버 ‘끝판왕’이 나타났다” “일단 잘못했습니다”처럼 재치 만점의 댓글이 줄을 잇는다. 변호사나 검사 출신 유튜버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전직 대법관 출신으로는 그가 유일하다.
-인기 유튜버가 된 소감이 어떤가.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지 몰랐다. TV 뉴스에 한 번 소개된 뒤로 구독자 수가 급격히 늘었다.”
-유튜브는 어떻게 하게 됐나.
“평소 대중에게 법률이나 판결에 관한 오해를 바로잡아줄 수 있는 통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딸이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면 누구나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 하고 싶은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할 수 있다’며 유튜버 활동을 적극 권했다. 사회적으로 조명받는 판결이나 대법원 판례 취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례를 소개하면 좋겠다 싶어 도전하게 됐다.”
벚꽃 나무 아래에서 유튜브 방송 촬영 중인 박일환 전 대법관/박일환 제공
박 전 대법관은 아이템 선정에서부터 원고 작성, 촬영까지 모두 자신이 도맡아 한다. 단, 편집과 자막은 딸의 손을 빌린다. 요즘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어떤 내용을 어디서, 어떻게 찍을까 고민한다.
-젊은 층 사이에서 특히 인기인데,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냥 평소 말하는 대로 하는데, 법을 어렵게만 생각하던 사람들에게는 내 설명이 좀 더 쉽게 들리나 보다. 처음에는 방송 배경을 어디로 할까 고민했는데, 마침 응접실이 벽지가 오렌지 색깔이라 괜찮겠다 싶어 촬영했는데, 한 구독자가 그걸 보고 ‘황토방에서 촬영했느냐’고 하더라(웃음). 특별히 꾸미지 않고, 어설픈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게 오히려 좋게 비치는 것 같다.”
-법률 서비스에 대한 젊은 층의 요구가 많음을 방증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방송을 할수록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법률 지식에 대한 수요가 늘고 법에 대한 이해가 과거에 비해 높아졌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법리와 판례의 단면만 보고 논쟁을 벌인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판결에 대해 그 취지를 제대로 설명해줌으로써 국민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
박일환 전 대법관/사진=지호영 기자
-‘판사’ 하면 으레 근엄하고 딱딱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일할 때는 냉철하려 애쓰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말수도 그리 많지 않고, 말투도 최대한 부드럽게 하려고 한다. 특히 나를 두고 ‘법조인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깨졌다’고 말해주는 분들에게 감사하다.”
박 전 대법관의 아내 문성옥(68) 씨 또한 “남편이 퇴임 이후 자칫 몸과 마음이 가라앉게 될까봐 걱정했지만 유튜브로 다시금 삶의 활기를 찾아 기쁘다”고 말했다.
-유튜브로 수익 창출도 가능한가?
“변호사는 영리활동을 못하기 때문에 광고수익을 얻을 생각은 없다.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나면 그때 생각해보려 한다(웃음). 나중에 구독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아 답변하는 방식이나 외부 인사를 초빙해 함께 방송을 진행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유튜브 활동으로 국민의 법률적 소양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 원문: 신동아 <
유튜버로 변신한 박일환 전 대법관(김건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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