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절이-전-고명… 부추의 무한변신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7-14 11: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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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이닝의 ‘부추탕면’. 사진=이윤화 씨 제공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 대표
학창 시절 여름 농촌활동을 가서 만들었던 요리가 부추겉절이였다. 밭으로 일하러 나가기 전 억센 부추에 멸치액젓을 넣어 섞은 뒤 뚜껑을 덮어뒀다. 몇 시간 지나 돌아와 보니 부추가 여름 더위와 액젓의 소금기를 이기지 못해 숨이 죽어 있었다. 하지만 약간 풀이 죽은 부추는 너무 억세지도 그렇다고 곤죽이 될 정도도 아닌, 적당히 씹기 편한 상태가 돼 있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고춧가루, 깨소금 등 약간의 양념을 가하니 부추겉절이가 꽤 그럴듯하게 완성됐다. 부추 요리를 할 때, 우선 부추가 ‘적당히’ 부드러운 채소로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작지만 즐거운 발견이었다.

경북 청도는 내게 ‘씨 없는 감’이 아닌 부추전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시간을 30년 전으로 돌려놓은 듯한 옛 가정집 식당인 ‘참물샘집’ 할머니의 부추전은, 부침개 한 장에 들어가는 부추 양이 내 기준으로 세상에서 가장 많다. 할머니는 한 뭉치 부추를 바가지에 넣고 썩썩 문질러서 부추의 거센 기운을 뺀 뒤 밀가루 반죽 위에 부추를 올려놓고 손으로 꾹꾹 눌러 반죽에서 삐져나오려는 부추를 진압한다. 열이 가해지면서 부추와 반죽은 점점 한 몸이 된다. 하지만 50년 이상 이어 온 할머니의 부추 숨죽이는 솜씨는 아쉽게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부추를 많이 재배하는 서천 농부의 밥상에서 야들야들한 어린 부추를 쌈 채소로 만났었다. 그 집에서는 뻣뻣해지기 직전의 부추만 따서 장아찌도 담갔다. 그렇기에 농가 부추장아찌는 먹다 보면 입안에 남는 부추의 섬유질이 훨씬 적어 먹는 데 부담이 없었다.

‘본초강목’에 부추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우리 장의 기능을 높인다는 효능이 기술돼 있다. 생활 속에서도 부추는 많이 먹지만 부추의 제 기능을 잘 살려 메인 음식처럼 나오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다.

중식당 ‘이닝’의 부추탕면은 생부추가 큰 국수그릇에 가득 덮여 나온다. 뜨겁고 걸쭉한 간장 빛깔의 수프를 뒤적이면 부추의 숨이 죽으며 부추 향으로 변신한다. 마치 동파육과 면을 함께 먹는 듯한 기분이 된다. 전북 완주 ‘기양초’는 상호 자체가 부추라는 뜻이다. 다슬기 솥밥에 부추무침을 넣어 비벼 먹으면 뜨거운 솥밥과 부추의 어울림으로 기양초(起陽草)의 한자대로 양기가 살아날 것만 같다.


대한옥의 꼬리찜을 유명하게 만든 것도 부추였다. 부추양념장이 꼬리찜에 부어져 나오는데, 푹 고은 꼬리찜과 부추, 양념장이 합을 이룬다. 고기 맛이 밴 양념장에 소면사리를 넣어 비벼 먹는 것도 별미다.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 대표

○ 이닝=서울 강남구 도산대로58길 14. 부추탕면 1만3000원(점심).

○ 대한옥=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로51길 6. 꼬리수육 3만6000∼4만9000원.

○ 기양초=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508. 다슬기부추돌솥밥 1만8000원.